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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Dec 06. 2023

면접을 봤어요

망했어요

이력서를 내고 며칠이 지나자 서류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사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원서를 내봤자 뽑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문학 강의이고, 인문학을 가르치기엔 나의 이력이 면접관들에게 흡족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고, 매번 서류는 합격하지만 끝내 고배를 마실 것이 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면 굳이 면접을 뭐 하러 보러 오라고 하나.. 싶었지만 그것 또한 귀한 기회이기에 가기로 했다.


두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서 차 안에서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소리 내어 연습했다. 머릿속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저장되지 않았다. 연습을 해도 꼭 기억했으면 하는 낱말들이 머릿속에 맴돌 뿐 슬쩍 커닝페이퍼를 봐야 준비한 말이 생각이 났다. 연습은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면접장으로 갔다. 면접을 기다리며 자꾸 마음이 말을 걸었다. 사실 나는 그 면접에 별 관심이 없고,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인, 그저 경험의 하나로 온 것이지,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라고 속삭였다. 어느 순간 그 마음이 진짜 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내 마음은 면접에 실패해 있었다. 면접도 보기 전 나는 벌써 떨어진 사람이 되어 수만 가지 변명을 되뇌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 포도는 신포도라서 먹을 생각이 없었다고. 아등바등 그 포도를 먹고자 그렇게 애썼음에도 관심 없었다는 여우처럼 나도 그러고 있는 거다.




면접은 항상 허를 찌른다. 작년 면접을 경험하고도 나는 그 모양이다. 내가 수업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 자신을 소개하는 것. 면접관이 그것을 하라는데 몹시 당황했다. 대부분의 면접에서 이력서등 제출서류를 들여다보며 질문하기 때문에 나를 소개해보라는 질문은 또 처음이었다.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나는 다른 대답 준비에 집중하느라 정작 나를 어필은커녕, 말하자면 저는, 전대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다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그럭저럭 해냈다 해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겨우 오분도 안되었다. 면접을 씁쓸하게 마무리했음에도 아마도 나는 애타게 결과를 기다릴 것이다. 이미 내정자가 있음을 알고 있어도 기대하게 된다. 면접이라는 것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결과 발표날까지 아마도 나는 우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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