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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Apr 16. 2024

모종 심기

꽃샘이 오지는 않겠지

4월에 들어설 때부터 언제 모종을 심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늘 식목일 즈음에 심어 놓고는 갑자기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저 야리야리하고 어린것들이 추위에 떨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5월까지 기다렸다 모종을 심기란 대단한 참을성을 가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매일 밭을 바라보다 오늘 심기로 한다.


도시농부에게 농사란 메인이 아니다. 시간이 될 때 하는 것이다. 모종만 있었다면 6시에 심었을 텐데, 모종을 사러 가야 했다. 오전에 잠시 일도 해야 해서 모종을 사러 시장에 간 것은 오후 1시였다. 중앙시장에 가면 다양한 모종이 많아서 마음으로 이것저것 살 것을 정하고 가도 눈에 띄는 다른 것도 주섬주섬 담기 마련이고, 더불어 산 모종이 나를 실망시켰던 적은 별로 없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중앙시장에 갔다. - 만차다. 근처 여기저기 주차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실패했다. 오늘이 아니면 이주일은 지나야 시간을 낼 수 있다. 딱 오늘 오후밖에 시간이 없는데 만차다. 주차에 실패하고 약간의 고민 끝에 문창시장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라면 괜찮은 모종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늘 생각한다. 요즘에는 시도 디카시가 유행이고, 인스타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고 해도 사진이 필요하다. 긴 글보다 하나의 사진이 알려주는 정보는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나는 사진 찍기에 몹시도 게으르다. 뚝딱폭짝 요리를 해 놓고는 아, 만드는 과정을 찍었어야 했는데... 하고, 금방 만든 따뜻한 음식을 식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재촉해 놓고는 맛있어하는 가족들을 보면 아, 먹기 전에 찍었어야 했는데... 한다. 글이 안 써지거나 쓰기 싫을 때는 이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하며 휴대폰 사진기를 막 눌러대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사진을 찍지 않는 아이러니라니. 모종을 심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아, 나는 유튜버는 글렀구나 하고 말이다. 여튼,


청양 고추 4개, 일반 고추 4개, 아삭이 고추 4개, 방울토마토 4개, 찰 토마토 4개, 가지 6개. 원래는 다섯 개씩 사려는 계획이었는데, 모종 하나에 500원씩이어서 그냥 딱 4개씩으로 정했다. 계산을 하는데 비리비리한 녀석 하나 넣어주겠다며 일반 고추 모종 한 개를 더 준다. 이 녀석들로 꽉 차지 않을 밭이지만 생각보다 종류가 많지 않아서 우선 27개의 모종을 심기로 했다.


적당을 간격을 두고 검은 비닐에 십자모양으로 칼집을 넣고 구멍을 내서는 물을 충분히 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종을 심고 다시 물을 주었다. 한낮에 모종을 심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지만, 내가 되는 시간에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나는 프로 농부가 아니니까. 담주쯤에 중앙시장이든 어디든 심고 싶은 것이 눈에 띄면 그때 추가로 심으면 풍성한 밭이 될 것이다.


씨를 뿌린 지 며칠이 지났고, 모종은 오늘 심었지만 수확은 시작되었다. 일요일에 겨우내 자란 부추를 잘라서 부추무침을 해서 먹었다. 부침개도 맛있겠지만 역시 쌩쌩하게 먹는 것이 더 맛있는 것 같았고 역시 맛있었다. 올여름도 부탁한다. 나의 쬐깐한 마당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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