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바(HP바)와 데미지는 어떻게 정보가 되었나
게임을 하다 보면, 추상적인 개념이 막대나 숫자로 시각화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체력이나 공격력, 스태미너 같은 요소는 원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게임에서는 이를 화면 한쪽에 게이지로, 혹은 적을 공격할 때마다 뜨는 수치로 보여 준다.
이것은 게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 체감하게 하는 중요한 마법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얼마 남았다” “얼마 줄었다”를 한눈에 확인하며, 캐릭터가 점차 강해지고 전투 상황이 역동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인식한다.
원래 체력과 공격력은 현실에서 직관적 측정이 어렵다. 격투나 전투에서는 싸우는 이들의 체력이 조금씩 소진되긴 하지만, 이를 수치로 표현하진 않는다. 게임이 체력바(HP바)와 데미지 숫자를 도입함으로써, 플레이어는 공격과 방어의 결과를 훨씬 명확히 이해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2(1991년)가 양쪽 캐릭터의 체력 상태를 화면 상단 막대로 시각화해 보여 준 이후, 격투 게임에서 이 방식은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게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이제 위험하다, 조금 더 신중해야겠다'라는 판단이 즉각 일어나고, 상대 게이지가 얼마 안 남았을 때는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디아블로 시리즈 또한 적을 때릴 때 무작위 데미지 수치를 화면에 표시해, 전투 손맛을 극대화했다. 2016년 GDC에서 열린 'Classic Game Postmortem: Diablo' 세션에서 데이비드 브레빅(David Brevik)은 “플레이어가 계속 전투를 반복하도록 만드는 것은, 숫자로 보이는 성취와 성장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적을 때릴 때 뜨는 데미지 수치가 커질수록, 캐릭터가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고, 전투가 중독적 재미를 갖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이렇게 무작위 보상을 시각화하는 기법은 부분 강화 이론과 맞물려 플레이어의 행동을 반복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제이미 매디건(Jamie Madigan)의 저서 『Getting Gamers』(2015)에서도, 불규칙적 간격으로 뜨는 큰 보상(가령 치명타 데미지)이 뇌에 도파민을 분비해 전투 반복에 몰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처럼 약점 부위를 정확히 치면 데미지 수가 다른 색으로 표시되거나, 디아블로처럼 폭발적인 숫자가 튀어오르는 장면이 바로 이 효과를 최대화하는 설계다.
Aaron Drummond & James D Sauer(2018) 논문에서 루트박스가 심리학적으로 도박에 가깝다고 분석했듯, 무작위 보상 구조가 플레이어를 계속 게임으로 이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도박과 달리, 게임 전투는 플레이어의 실력과 선택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차이가 있다. 큰 숫자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기술적 숙련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내가 노력해 이 보상을 얻었다는 만족도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수치나 게이지가 너무 명확하게 보일 때, 오히려 현실감을 깰 수 있다고 문제 삼는 흐름도 있다. 2008년 출시된 데드 스페이스는 고전적 HP바나 탄약 표시를 화면 귀퉁이에 두지 않고, 주인공 아이작의 척추 부분과 무기 자체에 연계해 배치했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몸에 붙은 형광 튜브가 빛을 잃어 가는 모습을 통해 체력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탄약은 총기의 홀로그램을 봐야 확인할 수 있다.
IGN 리뷰(2008년 10월)에서 이 방식을 가리켜 “UI를 없앤 듯 보이지만, 사실은 게임 속 세계 안으로 정보를 옮겨 놓은 셈”이라며, 이것이 공포 분위기와 몰입감을 배가한다고 평했다. 숫자와 게이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 캐릭터 몸이나 장비에 붙은 형태로 다이제틱 UI를 구현했을 뿐이다. 그 결과 적절한 정보 전달은 유지하면서, 화면이 산만하지 않아 몰입도는 더욱 높아졌다.
VR 기술이 확산되면서, 화면에 표시하던 체력과 데미지를 자연스럽게 옮기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2020)는 체력을 확인하려면 왼 손목 디스플레이를 직접 들여다보고, 탄약 수는 무기를 기울여 보아야 보이도록 만들었다. 밸브 개발진 인터뷰에 따르면, “이제 HP바나 탄약 수치를 화면 귀퉁이에 띄우면 VR의 몰입이 깨진다”며, 정보를 물리적 행동(손목 확인, 총기 기울이기)과 결합했다고 한다. 기존의 숫자 표시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를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핵심 문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처럼 기술이 바뀔 때마다 숫자나 막대 같은 전통적 UI가 재해석된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절, 디아블로의 무작위 수치, 데드 스페이스의 다이제틱 UI, 그리고 VR의 물리적 행동까지, 숫자는 어디에 두고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변주되는 모습이다.
궁극적으로 수치화는 내가 얼마만큼 적에게 타격을 주었고, 내 생명력이 얼마만큼 줄었는지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강력한 몰입 장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인공적 지표가 “판타지 분위기를 깰 수도 있다” “도박적 중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개발자들은 그 사이에서 다양한 해법을 찾아 왔다.
만약 숫자와 막대가 전혀 없었다면 우리가 보는 전투는 훨씬 더 모호했을 것이다. 상대가 얼마만큼 위협적인지, 나는 얼마나 위험한지를 그저 애니메이션이나 이펙트만으로 판단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한편 숫자가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 디아블로 팀이 걱정했듯 “너무 공학적이라서 판타지 감성을 해치지 않나?”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하드코어 RPG는 데미지 숫자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표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각각의 결정이 게임의 감성과 난이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숫자와 게이지가 게임을 게임답게 만드는 한 축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인간은 추상적 개념을 수치로 변환할 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이 '내가 얼마나 세졌고, 상대는 얼마나 약해졌는지' '지금이 공격할 타이밍인지, 후퇴해야 할지'를 빠르게 결정하도록 도와 준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게임에서 숫자와 막대가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참고 자료>
- Madigan, J. (2015). "Getting Gamers: The Psychology of Video Games and Their Impact on the People Who Play Them."
- Aaron Drummond & James D Sauer (2018). “Video game loot boxes are psychologically akin to gambling.”
- GDC 2016. “Classic Game Postmortem: Diablo” (데이비드 브레빅 발표)
- Polygon(2017). “The Making of Street Fighter II.”
<이미지 출처>
https://www.deviantart.com/wheresajacket/art/another-way-to-greed-s-lair-1020604014 by WheresAJacket
https://www.goodfon.com/games/wallpaper-badfon-dead-space-3-ayzek-klark-1641.html by Delt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