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비수 May 20. 2022

허구와 현실 사이의 구름

지난 주말 저녁,

드라마를 보다 가슴에 확 와닿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을 되뇌이다. 왠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 .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

한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


<나의 해방일지> 11화, 미정의 대사 중



이 대사를 곱씹으며

'그러게... 50년 후면 내가 살아 있을지,

할머니처럼 저기 저 땅 속에 묻혀 있을지,

알 수가 없는데

겨우 그 정도의 세월이면 이제 어딘가로 사라질 운명인데.

왜 이리도 아등바등 걱정을 등에 짊어지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살까?

왜 맨날 불안해하며 살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생각을 예전에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어느 시 구절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마주치는 두려움 앞에 주문을 외우곤 한다.

그런데 그 날 해방일지 속, 미정의 대사는

저기 저 먼 현자의 깨달음으로 인한 가르침이 아닌,

지구 어느 곳에 나처럼 살아가고 있을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한탄으로 들려서

공감이 가고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그녀는 '그러니, 부담갖지 말고 마음 비우고 살으라.'며 훈계하거나 충고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솔직하게 

자신 마음 속 불안과 어두움을 툭툭 내뱉는다. 


불안과 슬픔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삶.

기쁨과 환희, 즐거움, 환호, 희열... ... .

이런 단어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어릴 땐 나도 해맑게 웃었고

가슴이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즐거웠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내 자신이 좋았다.


지금의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자신을 안아 주는 것이

어른의 삶인 걸까?


별 볼일 없는 나.

그럼에도 살아가는 나.

이 삶의 의미는 무얼까.

난 왜 여기 있을까.


그럼에도 또 다시 드는 의문.

나 정말 별 볼일 없는가?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진 않지만

내 가슴을 잡아당기는 무언가.

그 무언가 속에 의미가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시간의 자전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