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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맥상 Nov 12. 2019

이젠
학부모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제 삶의 주체인 아이를 양육하는 위대한 존재. 양육자라 부르겠습니다.


아이들은 학생이, 보호자는 학부모가된 시대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대학 입학이라는 근시안적인 목표로 인해 

영어 단어 하나를 꾸역꾸역 집어넣는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갑니다. 

물론 아이가 정한 길은 아닙니다. 

철저하게 타인의 기대로 만들어진 과도한 교육열에 떠밀려 경쟁을 시작하죠. 

유니세프의 ‘국가별 학업 스트레스 설문조사’에서는 대한민국이 50.5%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도 OECD 국가 중 69.29로 최하위 그러니까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입니다. 

언제부터 수능날이 되면 ‘오늘은 자살하는 학생이 없어야 할 텐데’를 걱정하게 되었나요. 

학원 일번지 대치동은 학원과 함께 정신과와 청소년 전문 한의원이 성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 아이들 정말 어쩌면 좋을까요.



다음 세대를 살아갈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은 곧 시험 준비일 뿐입니다. 

시험 준비식 교육 방식에서는 아이의 발달상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교과과정은 편협해지고 교사 역시 시험을 위한 수업을 하게 될 뿐입니다. 

사회적 잣대 때문에 공부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명문대를 가야 성공이라는 인식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잖아요. 

우리 땐 공부를 잘 하는 것이 괜찮은 대학과 괜찮은 직장 괜찮은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곧 성공이라는 공식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수명이 연장되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교과서처럼 루틴화된 일은 로봇과 AI의 손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더 이상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을 보장하지 않고, 좋은 직장이 평생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배움보다 '지적인 즐거움'이 있는 배움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방법을 강구하고 깊이 사고하며 즐겁게 배우는 공부. 

그러한 공부를 평생 하려면 당장 코딩교육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배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는 지금, 놀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합니다


EBS 기획다큐 놀이 3부작 <놀이는 경쟁력이다>에서 21세기 인재상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능력은 놀이의 특성과 일치한다고 전합니다. 

창의적 혁신 Creative Innovation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 Communication
협력 Collaboration
콘텐츠 Content
자신감 Confidence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역량이 놀이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창의력, 협상, 학습 전략, 설득, 유연성 및 균형감각은 AI가 10년 뒤에도 취약할 부분입니다. 

유연하게 사고하고 소통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쟁력의 심지를 단단히 세울 수 있는 것은 놀이입니다.


놀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놀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놀이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행복 증진을 위해 우리 역시 놀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놀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놀이만 하지 말고 

지금, 놀아야 합니다.



아이를 학습의 주체가 아니라
인생의 주체로 바라볼 용기


지나친 학습지 의존, 사교육 중독은 불안함에서 나옵니다. 

우리 아이가 놀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불안함은 잠시 덮어두고 내 아이의 잠재된 가능성을 믿어줘야 할 것입니다. 

놀이식 학습이라는 얄팍한 속임수로 인해 

놀이까지도 즐겁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말고,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데 압박하거나 채근하지 말고 

자유롭게 놀도록, 잠시라도 즐겁도록 좀 놔둡시다. 

정말 똑똑하지만 결코 행복을 모르는 아이로 키우지 맙시다. 

그 똑똑함이 사실, 다음 세대엔 더이상 똑똑이 아닐 것이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학부모라 부르지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당신을 학부모님, 이라 칭했습니다.

아이를 많이 놀게하자는 우리가 여태 당신을 학생의 부모라고 칭하다니.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바라보는 관점, 사용하는 언어에 우리는 결국 사고가 지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호칭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당신을 양육자 또는 ㅇㅇ님으로 칭하겠습니다.


학부모란 학생의 보호자를 말합니다.

아이는 지금, 배워야할 존재가 아니라 배움을 즐거워하고 진정으로 놀이를 누려야할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이를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라 칭하지 않겠습니다.


양육자 또는 ㅇㅇ님.

이 표현에 익숙해지세요. 

학생의 부모가 아닌, 

제 삶의 주체인 아이를 양육하는 위대한 존재.

우리는 당신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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