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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 Mar 17. 2022

나의 악습관

너를 못 본 체하는 나의 악습관

나에겐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습관이 있다. 악습관이라고들 하지. 나는 카톡이 오면 바로 읽지 않는다.


오래된 친구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이 있다. 그 카톡방에선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대학생 때는 동아리부터 그때 사귀었던 남자 친구에 대한 험담과 자랑. 취업하고 나선 상사의 답답한 꼰대 기질과 직장 동료들의 무능력함에 대해서 잘근잘근 씹어대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간다. 나이를 먹고 나니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에 대한 고민, 시시콜콜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 먹이느냐까지… 살벌하고도 귀여운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갈 때 모든 대화의 첫 시작은 으레 “얘들아, 뭐해?”이다. 핸드폰 알람 상단 방에 이런 알람이 뜨면, 나는 일단 지운다.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은 체한다. 내가 포함된 3이라는 수를 줄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 메시지를 읽지 않음으로 그 수를 지켜줘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꿋꿋이 이후의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도 나는 모른 채 한다. 그러면서 궁금해한다.


 웃기게도 그 궁금한 이야기들은 상단의 알림 바로 한 줄씩 읽어가며 유추한다. ‘아~ 이 친구는 오늘 상사랑 이런 일이 있었구나’. 혹은 ‘오늘 만나서 술 한잔하자는 얘기군.’이라면서 몰래 훔쳐본다. 훔쳐보다가 너무 답답해질 때쯤에서야 앱을 켜서 지난 메시지들을 읽어본다. 마치 지금 처음 메시지를 읽은 것처럼 친구들이 해왔던 대화에 하나씩 첨언을 한다.


 대체 나라는 사람은 왜 이러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메시지를 선뜻 읽지 않고 모른 채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는 당연한 습관처럼 이렇게 살아와 의구심을 갖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탐구해보기로 한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카톡 메시지를 바로 읽는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 일이 없어 핸드폰만 보고 있다가 메시지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인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수요 없는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실제로 나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무언가 열중할 일이 생겼을 땐 메시지를 잘 읽지 못한다. 현재 내 인생에 펼쳐진 일에 집중하느라 그렇다. 그만큼 온라인 속의 인생보다 현실에서의 내 인생이 복잡하고 다채롭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온라인 인생에 집중하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의 인생에 집중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남에게 한가해 보이면 어떻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삶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유로운 삶은 타인에게 수요 없다는 삶이 아니다. 게다가 수요가 없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삶은 아니다. 혼자로서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인생이라는 뜻이다. 또한 타인과의 교류에 가치를 두며, 도움과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줄 아는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유로워 보이면 어떠하고, 설령 외로운 들 어떠하리. 인생이 항상 북적거릴 순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잠깐의 순간에 판단될 수도 있는 나의 삶에 집착했다. 단 한순간이라도 나의 인생이 복작거리고 바빠 보이길 바랐다.


바쁜 것과 남에게 바빠 보이는 것, 수요 있는 삶과 수요 있어 보이는 삶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리고 전자는 무의미에 가깝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껍데기이다. 아무리 껍데기로 보이려 노력해봐도 나의 현실과 알맹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쉬운 깨달음을 직접 글로 써봐야 이해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보이는 껍데기에 목매단 지 알 수 있었다.


Photo by ROBIN WORRAL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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