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l Mar 17. 2022

선택은 고통이다.

날 괴롭히는 선택이라는 고문

 선택은 항상 날 곤란에 빠뜨린다. 둘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그 상황이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여러 옵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항상 어떤 요소로든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돈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항상 제한적인 상황에서 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제한이 없다면 나는 선택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취할 것이다.


 나는 점심 메뉴를 정할 때도 선택이라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하루에 점심은 한 번뿐이기에 나는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나의 식사량에 한계가 없다면 선택이라는 곤란함에 빠지지 않을 텐데. 하루에 점심이 여러 번이었다면 한 가지 메뉴만 고를 필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아무것이나 먹고 영 맛이 탐탁지 않거나, 상사의 기분을 거스를 정도로 주문한 식사가 늦게 나오는 상황을 겪어도 내가 민망해할 필요는 없을 텐데 싶었다.


 출근을 한 주 앞두고 무엇을 해야 하나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일주일의 자유가 소중할수록 선택의 고통은 깊어진다. 여행을 가야 할까? 직장 생활하면 가기 어려울 점심 코스를 즐기고 와야 할까? 대단하고 거창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반복될 때 즈음에는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에 진절머리가 나게 된다. 내가 지금 고르게 된 이 수많은 옵션 중의 하나가 나비 날갯짓이 되어 몇 개월 뒤, 몇 년 뒤에는 180도가 달라진 전혀 다른 인생을 가지고 오게 될까? 글쎄올시다. 그때 내가 무엇을 한 건 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을걸. 날갯짓은커녕, 먼지다듬이가 일으킨 바람만큼도 되지 않아서 내 인생은 의외로 큰 변화 없이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고민한다. 지금 이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후회를 불러일으킬 것이냐는 생각을 기반으로 매번 고민한다. ‘후회’가 중점이기 때문에 매번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후회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도 불러일으킨다. 나중에 겪지 못할 행복을 미리 겪지 못하게 한 현재의 내가 갖는 죄책감이다. 미래에 할 수 없는 선택을 지금 대신해주고 싶다. 그래서 수만 가지 가능성을 고민한다. 내가 겪게 될 불행과 행복들은 어떤 것일까 매번 가늠해본다.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두고 나는 제일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미루고 미룬다. 최종의 순간까지의 지연은 편의점에서 900원짜리 가나 초콜릿을 사는 것만큼 쉽고 달콤하다. 쉽게 얻을 수 있는 만큼 쉽게 중독된다. 


 선택은 이렇게 다른 중독의 기로로 빠지게 할 만큼 고통스럽다. 중대한 선택일수록 외면하고 싶어 진다. 후회를 불러일으킬 만한 선택일수록 도망가고 싶어 진다. 선택의 결과가 파도로 몰려와 눈두덩이까지 차올라 눈물로 흘러내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한다 하더라도, 그 파도를 못 본 체하고 뒤돌아 걸어가고 싶다. 그만큼 선택은 괴롭다. 그 결과가 나에게 큰 바람이 되어, 지금 발 디딘 곳을 떠나 날아가 다른 곳으로 날 이끌어갈 만큼의 선택일수록 괴롭다.


 그 괴로움은 애정과 사랑과 행복에 대한 지대한 열망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다. 그 열망이 꺼지지 않을 정도의 결과를 내가 가져올 수 있을까? 의문은 반복되어 불신이 된다. 불신은 나의 선택에 고통을 선사한다.


나의 선택은 고통이다.


Photo by Egor Myznik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악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