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룩말 Feb 05. 2023

아버지의 냉면

이북냉면에 대한 단상 

  아버지는 국수를 좋아하셨다. 육수를 내는 멸치와 소면은 우리 집 부엌에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국수 한 그릇 삶아 봐라.”


  저녁상을 배부르게 물리고 나서도, 졸음이 사악 올 무렵이면 아버지는 자리에 누우려는 엄마를 시켜 꼭 국수를 삶게 했다. 맑고 구수한 멸치국물에 부드러운 소면을 말아 한 그릇 잡숴야만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간편한 3분 우동이었고, 때로는 얼큰한 라면이었지만 그래도 면은 거르지 않았다. 엄마는 국수 삶기에 이력이 나서 눈감고도 만들 지경이었다. 


  사실 우리 집 국수 중 백미는 냉면이었다. 가정집에서 냉면 면발까지 뽑을 수는 없어서 면은 시판용을 구입했지만, 국물만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아버지는 손수 담근 동치미에, 고기 삶은 육수를 섞어 당신만의 냉면 육수를 제조했다. 동치미의 시원한 맛과 고기육수의 진하고 고소한 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 한 항아리를 담가 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냉면 한 그릇씩 먹이고 나서 ‘서울에 내로라하는 평양냉면집들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한 번은 학교에 다녀오니 집에 손님들이 북적북적했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꿩고기를 구해다가 꿩 냉면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꿩냉면은 이북의 전통 음식이었다. 꿩고기와 뼈를 넣고 육수를 우려내고, 곱게 다진 꿩 뼈와 살코기를 섞어 완자를 만들어 고명으로 올렸다. 냉면 전문 식당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꿩냉면을 가정집에서 맛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꿩냉면은 두고두고 아버지의 추억이자 자랑이 되었다.

 

  아버지는 평안도에서 육이오 때 내려온 피난민 가족의 막내 꼬맹이였다. 할아버지는 평안북도 영변 출신이라고 했다. 빈손으로 목숨만 간신히 부지한 채 내려왔어도 먹는 데 대한 이북 사람들의 진심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어릴 때 먹던 음식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버지 어릴 때 할머니가 저녁 밥상을 치우시면서, 이따 국수 먹을 사람 몇 명이냐고 미리 주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섯 남매가 서로 먹겠다고 손을 들면 할머니는 밥상을 치운 다음 으레 국수 말 준비를 하셨다는 것이다. 저녁밥을 채 다 먹기도 전에 국수 야식을 예약하는 특이한 문화가 비단 아버지 집안의 내력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은 남편을 통해서다. 아버지의 국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친구네 가족이 생각난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이 학창 시절 놀러 가서 자는 날이면 친구 어머니가 저녁상 치우면서 으레 국수 삶을 준비를 하셨다는 거였다. 친구가 자기 집에서는 늘 밤에 국수를 먹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집안이 이북 출신이라는 거였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버지 젊은 날에 미국에 이민을 갔다. 두 분은 결국 평안북도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미국에 묻혔다. 밤마다 상에 둘러앉아 국수를 같이 먹던 다섯 남매는 바다 건너 해외로,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 만나지 못했다. 세월이 만든 감정의 골이 깊어만 갔다. 아버지가 한 항아리 만들었던 냉면 육수를 엉뚱한 이들만 불러 먹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야겠다고 했다. 형제간 왕래는 없어도 제사는 장남인 큰아버지 댁에서 으레 모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먼 친척을 통해 큰아버지댁 외아들이 먼저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외아들이 그렇게 됐는데 제사 지낼 정신이 있겠냐면서, 분명 제사를 못 지낼 듯하니 당신이 제사를 지내야겠다는 것이었다. 

  "아빠, 이제 와서 무슨 제사예요."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내가 다 하면 된다."

 어머니는 잠자코 아버지 말만 듣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새워 차린 제사 음식이 부엌에 가득했다. 우리 집 풍경에는 어색한 제사상에 냉면 두 그릇과 이북식 돼지고기 전이 올려져 있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았어도 명절에 아버지가 부쳐서 혼자 술을 드시던 그 돼지고기 전이었다. 돼지고기 수육을 넓적하니 크게 떠서 달걀물 묻혀 전처럼 부쳐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불러서 냉면을 먹였는데 이 제사상 위에서 이제야 아버지의 냉면은 주인을 찾은 것이었나.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 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 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긇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 <국수> 중에서 -     


  평안도 출신인 시인 백석이 이렇게 고백할 만큼 국수는 이북 사람들에게 고향이자 삶 그 자체였는가. 이 시에서 ‘국수’는 메밀이 많이 재배됐던 추운 이북 지방이니만큼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말은 이북냉면이었으리라. 아버지의 냉면은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지난날 떠나온 이북땅을 다시는 못 밟은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어디가 뿌리 묻힌 곳인지 모른 채 머리둘 곳 찾아 살아온 이북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꼭 잡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의 특제 냉면육수의 비법을 미처 전수받지 못했다. 돌아보면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냈다. 아버지와 나는 냉면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냉면이 뭔지, 아버지에게 냉면이 뭔지. 우리는 그렇게 새털같이 많은 날들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엉뚱한 이야기만 하면서 인생을 흘려 보낸다. 


 가끔 이북 냉면의 전통을 잇는다는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는다.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을 아직은 나는 백석처럼 알지 못한다. 고담하고 소박한 맛도 나는 모른다. 그래도 가끔 평양냉면의 육수가 생각나는 날이 있다.  식초도 겨자도 아무것도 넣기 전에,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젓기도 전에 사발째 입에 대고 육수의 반이나 후루루룩 목젖으로 들이키던 아버지처럼, 그렇게 마셔 본다. 사람의 삶은 이리 저리 휘돌고 말로는 다 하지 못할 굴곡으로 굽이져 있을지라도, 냉면 육수의 맛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을 달래준다. 아버지를 거쳐, 할아버지를 거쳐, 백석을 거쳐, 슴슴한 냉면은 강단있게 뱃속을 휘돌아 내려간다. 냉면은 힘이 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