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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May 10. 2022

당신의 의지와 실현 사이의 거리는 얼마입니까

실화 산악 다큐 영화 <터칭 더 보이드(Touching The Void)

팟캐스트 <월간 김어준>에서 산악인 박정헌의 인터뷰를 들었다.


2005년 촐라체 북벽 등반에 성공하였으나 함께 등반했던 후배 최강식이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두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는 드라마를 겪는다.


그 사건으로 인해 손가락을 잃은 박정헌은 그 이후 패러글라이딩으로 알프스에 등정하는 도전정신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고.



크레바스 사고를 이야기 하면서, 김어준이 영화 <터칭 더 보이드>와 비슷하다고 하자 박정헌 등반가는 그 이야기도 등반가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실화인데, 그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의 다른 점은 그 이야기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묶었던 밧줄을 끊고 자기만 살아 돌아갔던 것이고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밧줄을 끊지 않고 둘이 같이 돌아왔다는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터칭 더 보이드>의 실화에서 두 사람 다 목숨을 건지기는 한다.


이 인터뷰를 듣고 <터칭 더 보이드>라는 영화가 궁금해졌다.


평소 산악 영화는 스릴 있기는 하지만 큰 흥미를 못 느꼈는데, 엄청난 경험을 몸소 겪은 산악인의 입으로 들으니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OTT를 찾아봤다.


넷플릭스에도 와챠에도 없어서 포기하려던 찰나, 케이블 TV VOD에 있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38688


산에서 인연을 맺은 두 친구 조 심슨과 사이먼 예이츠는 아직까지 아무도 등반하지 않은 안데스 산맥의 시울라 그란데 서벽을 등반하기로 결정하고 등반 여정에 나선다. 깎아지른 듯한 빙벽을 손도끼와 두 사람을 연결한 자일에 의지해 결국 정상을 정복한 두 사람. 하지만 정상을 내준 시울라 그란데는 이들의 하산 여정에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고통과 끔찍한 공포를 선사하는데...  (네이버 영화) 






20대의 혈기 넘치는 산악인 조와 사이먼은 절친한 친구 사이.


이들은 안데스 산맥의 시울라 그란데 산맥을 올라가기로 한다.




1985년이니 장비도 지금보다는 열악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젊은 패기를 앞세워 단숨에 등정에 성공한 두 사람, 그런데 내려올 때가 문제였다.


눈 덮인 암벽이 무너지면서 조는 다리를 다쳐 무릎이 완전히 돌아가고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하산이 어려워진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로프로 묶고 한 명씩 차례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하는데...



그러나 크레바스 바로 위 빙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조,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로프에 변화가 없자, 사이먼은 조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혹은 믿어버리고) 로프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혼자서 하산한 사이먼.


내려오는 길에 조가 매달렸을 법한 곳을 보니 크레바스가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사이먼은 백 프로 조가 죽었다고 믿어버렸다.



사이먼은 무사히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오고 조는 정말 구사일생으로 크레바스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두 다리를 쓸 수 없고 아무런 장비도 없는 조가 맨손으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는 죽음의 소리를 귓가에 들으며 살아 돌아온다.


이것은 모두 실화다.




영화는 두 사람의 갈등을 부각하기보다는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거의 본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생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로 살아 돌아오는 조의 하산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나 역시 그 부분에 감명받았다. 


다리를 쓸 수 없어 눈 덮인 산에서는 엉덩이로, 온몸으로, 기어서, 굴러서 내려오다시피 했고 눈 쌓인 부분이 끝나는 돌 산에서는 온몸으로 돌 위를 구르고 한 발자국 뗄 때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내려왔다.


그는 자신에게 마치 제3의 감독관이 된 것처럼 냉정하게 명령한다.


손목시계로 몇 분이 지날 때까지 시간을 정하고 어느 지점까지 간다는 목표를 준다. 그 지점까지 시간 안에 도달하면 만족스러웠고, 도달하지 못하면 더 열심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감독관은 자신을 봐주지 않았다.


조 자신도 '살아서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얼음산 속에서 죽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시체를 찾기 쉬운 낮은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목숨을 구했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고 손발을 잃고도 다시 산에 오르는 산악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본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전율이 온다.


누구나 이것을 해야겠다는 의지는 갖고 살지만, 의지와 실현 사이에 거리는 서로 다를 듯하다.


나의 의지와 실현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마치 안데스 빙벽처럼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삶의 깎아지른 암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나는 그 어떤 의지를 앞세우고 있을까.


깊이를 모르는 시커먼 크레바스처럼 내 발 밑에 입 벌리고 있는 미지의 시간 앞에서,


현실을 부수고 나갈 날카로운 의지와 실현을 가지고 있는가.





영화는 조와 사이먼 실제 인물의 인터뷰를 한 축으로 그들의 육성을 통해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그들의 심정을 들으면서, 한 축으로는 산을 오르는 장면을 재현한 장면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이 다큐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산악인 박정헌의 인터뷰를 꼭 보거나 읽기를 추천한다. 


실제 인터뷰와 재연 장면이 효과적으로 편집되어서 당시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독 캐빈 맥도널드는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알고 보니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 <Can I Be Me>의 감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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