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as Lazzaro (행복한 라짜로)에 이어 "봉준호가 꼽은 최고의 영화 10선 도장깨기 2편"으로 이어갑니다. 바로 Vengeance Is Mine (복수는 나의 것) 입니다.
우리나라 관객에게 친숙한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감독의 2002년 작품인데, 이번 영화는 일본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입니다.
쇼헤이의 영화가 먼저 나왔으니 박찬욱 감독이 제목을 따라한 건데, 쇼헤이의 영화가 기존에 있기 때문에 조금 망설였지만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은 쇼헤이 감독 이전에도 이미 세상에 여럿 있기 때문에 그냥 썼다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을 일본에서 개봉할 때는 조금 바꿨다고 하네요. 박찬욱 작품의 영어 제목은 Sympathy for Mr. Vengeance 로, 쇼헤이의 Vengeance is Mine과는 다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를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아주 낯설지는 않은 것이, 90년대 후반 일본영화들이 정식으로 국내 개봉되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좀 본다는 사람들은 <우나기> <나라야마 부시코> <간장선생> 등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90년대 이전에 이미 쇼헤이는 기념비적인 영화들을 만들었고, <복수는 나의 것>도 그중에 하나인데 90년대 후반에야 우리나라 극장에 정식으로 걸리게 되었던 것이죠.
대학생 때 <우나기>를 보았으니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이번에 <복수는 나의 것>을 블루레이로 보면서 이마무라 쇼헤이라는 엄청난 감독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으로 사키 류조의 책도 있는데, 두 작품이 조금 다른 것은 실화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넣느냐의 차이라고 하는군요.
영화는 주인공 에노키즈의 경악할 만한 연쇄 살인과 사기 행각을 따라갑니다.
에노키즈는 언변이 화려하고 외모가 말쑥해서, 주변 사람들을 잘 현혹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또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무참히 살인을 저지릅니다. 에노키즈의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종교를 이유로 핍박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에노키즈는 나쁜 짓을 하며 감옥을 들락거렸고, 어떻게 결혼을 하기는 하나 에노키즈가 감옥에 들어간 사이에 아내와 에노키즈의 아버지 사이에 묘한 애정기류가 흐릅니다. 나중에 출옥한 에노키즈는 이것을 빌미로 둘을 비난하게 되고 아내를 괴롭히게 됩니다. 마침내 에노키즈가 연쇄 범죄 행각을 '사형'으로 마감하게 되는데, 영화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와 아내가 산에 올라가 에노키즈의 뼈를 뿌리는 장면입니다. 지금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한데, 당시의 기술로서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최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뼈가 공중에 떴다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멈춰버리는 장면이죠.
뼛조각이 공중에 뜬 상태로 화면을 정지시켜 버리는데, CG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영화가 줄곧 연쇄 범죄를 매우 사실적으로, 하드보일드하게 그려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공중에 멈춘 뼛조각이라니... 이 언발란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과 논란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제목 <복수는 나의 것> 또한 논란이 많습니다. 에노키즈는 사실 어떤 복수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뒤틀린 본능과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인과 사기를 저지를 뿐, 그를 딱히 괴롭힌 사람도 그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연쇄살인은 '복수'였던가? 누가 무엇에 대해 복수를 했단 말인가? 아니면 여기서 복수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는 것인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정답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초반부터 푹 빠져버렸던 것은 영화를 끌고 나가는 감독과 배우의 엄청난 에너지 때문입니다. 영화는 시간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어서, 에노키즈가 경찰에 잡혀오는 것이 첫 장면입니다. 구치소에 들어왔지만 에노키즈는 의기양양하고 유들유들한 자세로 수사관들을 대합니다. 그를 태우고 오는 차량의 행렬을 따라가며 영화는 뭔가 긴박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재즈풍의 음악과, 시간 순서를 앞뒤로 왔다 갔다 거칠고 투박하게 진행되는 사건의 흐름. 마치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툭 툭 조각내는 칼질처럼 영화는 망설임 없이 에노키즈의 경악스러운 행동을 따라갑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에노키즈가 살인을 저지른 뒤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자신 스스로의 소변으로 씻어내는 장면입니다. 이게 실화에서 가져온 것인지, 감독의 창작인지 모르겠으나 이 장면 하나로 저는 에노키즈라는 기형적인 살인자가 완벽히 설명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인을 저지른 것 같지만, 물이 없으면 소변으로 피를 닦아낼 정도로 에노키즈는 이성적이고 침착했으며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쾌감을 느낄 소변으로 손을 닦는, 태연한 에노키즈의 모습은 사회적인 상식과 통념, 인간으로서 기본적이고 본능적으로 지닌 불쾌감의 영역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이 장면 하나로 완전히 이해시키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수는 나의 것>의 대담함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범죄영화들이 이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니, 다른 범죄영화들은 학생들이 만든 영화였구나.. 그만큼 강한 임팩트를 남긴 영화였습니다. 스타일과 내용 모든 면에서 그랬습니다.
이 영화의 해석을 찾아보면 일본사회의 단면, 어두운 면을 드러낸 영화라는 해석도 많습니다. 연쇄 살인범죄라는 것이 사회적인 맥락을 갖고 있기도 하고, 에노키즈의 아버지가 군국주의에 종교적인 박해를 받는 부분이 들어간 것도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해석이 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서늘하고 묵직한 감정이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대단한 작품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