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덮쳐오는 막막함에 망아지 아젯은 숨을 집어삼켰다.
난데없이 망망대해나 허허벌판에 솟아오른 기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젯은 기억을 더듬었다.
아젯이 살던 마구간 벽에 달린 입들은 무척 수다스러운 편으로,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지.
-지금은 이쪽으로 가야 해. 왜냐고? 크면 다 알게 될 거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걸.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소리잖아.
언제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떠들고는 했다.
그것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린 아젯은 그 외의 세상을 알지 못했고,
벽의 목소리는 공기처럼 사방에 가득 들어 차 있었으니까.
아젯은 태풍 앞의 낙엽과도 같았다.
몰아치는 말소리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달리는 중 언뜻언뜻 마주쳤던 괴리감들.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던 괴리감들이 차곡차곡 쌓여,
걸려 넘어지듯 주저앉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주저앉은 아젯은 멍청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 발로 왔음에도 낯설기 짝이 없는 풍경.
자신이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는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속이 텅 비어 껍데기만 남은 감각.
지금까지 나의 삶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무섭게 짓쳐드는 공허함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때 문득 아젯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입 투성이의 벽.
이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머리도, 귀도, 눈도 없었다.
머리도 없으면서 어떻게 세상의 이치를 다 안다는 듯 단호하게 굴 수 있었을까.
눈도 귀도 없으면서 어떻게 아젯에 대해 다 안다는 듯 위하는 척 떠들 수 있었을까.
어쩌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지도.
세상에 대한 것도, 아젯에 대한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당위성 짙은 사회적 통념만을 메아리처럼 되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뱉은 말 중 무엇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지금껏 자신을 지배해오고 있던 것이 그런 허상이었다는 사실에 아젯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루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허망한 것이 당연했다.
내 안에 남의 목소리만 가득하니 공허한 것이 당연했다.
"내가 없는 삶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 간단한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 우스웠다.
아젯은 시끄러운 남의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길이 아니라, 나를 잃어버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