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떤 문을 선택하시겠어요?"
문지기가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라피스의 앞에는 세 개의 문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문양과 색으로 꾸며진 문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문들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데요?"
라피스의 물음에 문지기가 익살스레 손을 휘저었다.
"숲길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고, 사막길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고,
초원길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지요. 문을 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답니다."
"그러면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면 준비라도 철저히 해야겠어요."
라피스의 말에 문지기가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그건 힘들겠는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때가 지나면 선택의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리기 마련이랍니다."
"너무하네요.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다니."
라피스의 토로에 문지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세상사가 다 그렇죠, 뭐. 그보다 편하게 생각해요. 어차피 정답 같은 건 없으니. 그냥 마음에 끌리는 문을 선택하면 돼요."
라피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선택으로 미래가 결정되는데 아무 문이나 선택하라고요?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닌가요?"
문지기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라피스를 진정시켰다.
“뭔가 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선택한다고 미래까지 결정되는 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죠?"
“선택한다는 것은 어느 길로 발을 들일지 결정하는 것일 뿐.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온전히 그대에게 달려 있다는 이야기랍니다. 꽃길이어도 한눈을 팔면 길을 잃고 방황할 테고, 가시밭길일지라도 함께할 누군가가 있으면 견뎌낼 수 있을 테죠."
하지만 라피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걔 중에는 분명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것 아녜요.
길을 잘못 들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면 제가 한 번 물어보죠."
문지기가 즐거운 어조로 조잘거렸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나았을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얻을 수 있나요?"
라피스는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그야 가지 않은 길은 영영 모를 길이 되어버렸으니까.
문지기는 말하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대가 딛고 선 길 뿐이라고.
하지만 그 말이 맞다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불식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문을 연들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느 길이 나은지 알 방법도 없다면,
선택이라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울 것 같은 라피스의 목소리에 문지기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잘 들어요, 라피스.
선택이란 그대의 마음을 비추는 질문이랍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들이 이어지며 그대가 품은 마음의 증명이 되겠죠.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땐 그대를 열어 들여다보도록 해요.
그리고 걸어가요. 가장 그대답고, 가장 그대다울 수 있는 길로."
내가 걸어가는 곳이 나의 길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