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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솨 Sep 21. 2019

퇴근길 따릉이 타고 한강 라이딩

#07 글쓰기 주제 : 자전거








8월의 어느 날.



내내 흐리다 모처럼 나타나 빵긋빵긋 웃는 햇빛과

상쾌한 바람 덕분에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안 하던 짓을 하기도 한다던데.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안 했던 짓을 이 날따라 유난히 해 보고 싶었다.



그건 바로 사무실 블라인드 걷기.









뜬금없겠지만,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한 이례로 블라인드를 걷어본 적이 없다. 회사 건물 자체가 통유리로 둘러 쌓여 있는 데다가 창문도 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블라인드를 걷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른 직원들 역시 축 쳐져 있는 블라인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모처럼 쨍! 하고 나타난 화창한 날씨인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싶은 마음에 블라인드를 걷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선명한 하늘색과 솜털 같은 구름들은 내 마음을 몽실몽실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무조건 한강이다.










6시 땡! 치자 마자 지하철을 타고 옥수역으로 갔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잠원 한강공원이 있긴 했지만, 옥수역은 예전에도 혼자 퇴근하고 왔었던 경험이 있어서 좀 더 익숙한 쪽을 택했다.  


옥수역에서 내리자마자 3번 출구 쪽에 있는 따릉이 자전거 대여소로 향했다. 휴대폰으로 대여 현황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데, 날씨가 모처럼 좋았던 날이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자전거를 많이 대여했다.




아,, 그런데 이게 뭔 일이람.









따릉이를 탄지 5분도 안돼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


평온해 보였던 내 머리 위 새파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순진한 줄로만 알았던 한강이 무서운 얼굴로 넘실거렸다.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사실 뒤돌아서 다시 자전거를 반납하고 집에 갔어도 괜찮았었는데. 근데 그냥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계속 페달을 밟았다. 앞으로, 앞으로.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큰 다리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멈춰 있었다.

누군가가 곧 그칠 비라고 말하는 것을 곁 듣긴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 비가 그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은 불안함과 고민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함과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비는 금방 그쳤고, 나는 한 겹 벗겨진 기분으로 촉촉하게 젖은 자전거 도로 위를 기분 좋게 달렸다.









한강이 보여주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은 한강을 바라볼 때마다, 한강을 찾아올 때마다, 매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길 지옥철에서 바라봤던 삐죽삐죽한 빌딩들은 차갑고 매몰차서, 어쩌다가 스쳐 지나가듯이 잠깐 쓱 보게 되더라도 시린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이때 만난 빌딩은 한강 덕분인지, 햇빛 덕분인지. 찬란하고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반포대교에 도착했다.



지난번 퇴근 후, 혼자서 첫 라이딩을 했을 때에는 반포대교에서 다시 옥수역까지 되돌아 가서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었었다. 그 순대국밥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그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덕분에 반포대교 아래, 건널목에서 잠시 멈춰 있는 동안 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지금의 기분 좋음에 순대국밥이라는 포만감을 얻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갈등을.





하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더 나아가 보고 싶었다.





한강은 어차피 이어져 있으니, 잘하면 우리 집 근처까지도 갈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옥수역-반포대교-옥수역-순대국밥 코스] 말고도 또 다른 나만의 한강 라이딩 코스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내 안에서 꿀틀 거렸다.




좋은 엉뚱함과 좋은 욕심이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으로

이 날의 해가 저물어 가기 시작했는데,


내 앞을 앞서 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까 꼭 빛을 쫓는 하루살이들 같기도 하고









하늘이 점점 더 빨갛게 타올랐을 때에는


붉은빛을 향해 모험을 떠나는 무리에 동참한 탐험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모두 같은 방향,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페달을 밝고 있으니까 순간적으로 동질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이 날의 하늘은 정말 다채로웠다.


해가 저무는 쪽의 하늘도

그 반대편의 하늘도


모두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서울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기에는 어려울 거라고 단정 지어 왔었던 나였기 때문에, 내 앞에 펼쳐진 황홀한 풍경을 한동안 멈춰서 한없이 바라봤다.




하지만 나의 감상을 깨는

또 한 번의 빗줄기가 구름을 뚫고

순식간에 찾아와 황홀한 풍경을

어둡고 칙칙한 것으로 바꿔버렸다.





아 또 비야?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페달을 굴렀다.

눈 앞에 보이는 다리가 없었다. 나무가 무성해서 비를 막아줄 수만 있다면야 그것도 괜찮을 것만 같았으나, 막상 찾으려니 무성한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무서웠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만난 비는 더 짙은 어둠을 몰고 왔다. 그리고 반포대교에서 이촌 한강공원 방향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산책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인간은 간사하다.


아까 반포대교에서 다시 되돌아갔으면 지금쯤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이 비를 밥친구로 삼고 순대국밥을 신명 나게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 서글퍼졌다.










감정선이 흐트러지니, 그제야 종아리에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다.


눈물 한 방울이 시야를 가리려던 찰나.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인지, 저 멀리 정자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지나갈 먹구름 비 같아 보였다.




지나가던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앉았다.

어떠한 말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들 허공만을 응시한 채 적막 속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에 집중했다.




오늘 마주한 여러 감정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았다.




패기 넘치게 혼자 망원까지 가려고 했던 나.

배고픔도 잊고 열심히 페달을 굴렀던 나.

지는 해를 바라보며 벅차올랐던 나.

혼자라서 무서웠던 나.




하루 동안 참 많은 감정 변화를 느꼈다고 생각하니

급 피로감이 몰려왔다. 대여시간인 1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종료 문자도 나를 초조하게 했다.





더 이상 가는 건 무리였다.




배터리도 한자리 수였고, 내가 모르는 곳이라 길도 몰랐다. 휴대폰이 이대로 꺼지면 자전거 반납은커녕 집에 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내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보니, 현대자동차 서비스 앞 대여소가 있었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육교를 건넜다.









육교를 건너는 내내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이 와중에 육교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내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에서 바라본 최고의 하늘이었다.








교통체증마저도 빛나 보였던 순간.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



현대자동차 서비스 앞 대여소는 내 기준 굉장히 외진 곳에 위치 해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도 택시도 일도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곳에 있었다.



카카오 택시라도 부르면 오지 않을까 싶어 어플을 설치하려고 보니, 배터리도 배터리지만 데이터가 없었다. 엉금엉금 느린 속도로 깔리는 어플을 쳐다보며 으슥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라도 찾아야 될 것 같았다.










어찌어찌해서 찾아오게 된 효창공원앞역.


다리도 후들거리고 땀범벅에 최고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지하철을 탔다. 내 인생 가장 찌질한 모습으로.









그래도 뿌듯한 하루였다.




언젠가 무작정 혼자 떠났던 홍콩 여행에서 마지막 날 느꼈던 벅차오름과 혼자서도 무사했다는 뿌듯함 비스무리한 감정들을 이 날의 끝에서도 느낀 것 같다.





한 뼘 더 성장한 기분으로 퇴근길

따릉이 타고 한강 라이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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