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10시간전

정우성의 독보적인 10년 발자취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사임한 배우 정우성

'저희 기구 친선대사이신 정우성 배우의 한 해 활동 관련하여 좋은 기사를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선대사님께서 이 기사를 '2018년의 선물 같은 기사'라고 하셨어요.'


2019년 1월 2일, 정우성 배우로부터 타전된 짧은 전언을 받게 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공보관으로부터였다. 2018년 마지막 날을 하루 남기고 쓴 <댓글테러마저... 정우성의 반성이 이뤄낸 놀라운 일들>이란 제목의 칼럼에 대한 화답이었다.


'세월호-친일-난민 문제에 목소리 내... 그의 연말이 특별한 이유'라는 부제가 붙었던 해당 칼럼은 2018년 한 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로서 정우성의 활동을 정리하고 다음 1년의 활약을 기대하는 글이었다.


선물 같은 메일이었다. 다소 과장을 보태자면, 딱히 인터뷰도 아닌 한낱 칼럼 글을 쓴 이에게 간소하게라도 액션을 취한 정우성의 모습을 접하고는 어렴풋이 그의 어떤 진심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즈음 정우성의 활약은 말 그대로 눈부셨다.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꼭 아니더라도 꽤 광범위한 누군가에게 선물과도 같은 활동과 발언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독보적인 10년 동안의 행보

   

▲ 지난 2019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 있는 로힝야 난민 아동들을 위한 교육 센터에 방문한 정우성 친선대사. ⓒ 유엔난민기구(UNHCR) / J. Matas


정우성은 우선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에 열심이었다. 2017년 11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2018년 6월엔 '2018 제주포럼'에 참석, 특별세션 '길 위의 사람들: 세계 난민 문제의 오늘과 내일'의 강연자로 나서 1500여 명 관중에게 전 세계 난민현황과 자신이 이라크, 방글라데시 등 현장에서 만났던 난민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방송 홍보 활동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같은 해 10월 유튜브 방송 <다스뵈이다>에 출연한 정우성은 "모든 것에 인내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 됐다'고 착각을 하면서 인내력을 내려놓을 때가 있는데,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법무부가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인 300여 명에게 '인도적 체류 허가' 결정을 내리면서 광화문광장에서 '난민 환영'과 '난민 반대'를 주장하는 두 단체가 난립하는 풍경이 연출되던 시기였다. 정우성도 댓글 공격에 시달렸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난민과 관련된 의견을 밝히면서다. 그의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공격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우성은 소셜 미디어 상에서의 숱한 공격에 대해 "오히려 난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대중이 가짜 정보를 접하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생각을 돌리거나 떠나버리는 일이 생길까 걱정됐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또 6월 20일 난민의 날을 맞아 공영방송 KBS의 메인 뉴스에 출연했다. "국민의 관심이 바람직한 국가를 만든다"는 소신 발언을 남겼다. JTBC <뉴스룸>이나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라이브> 등 시사 프로그램에도 줄줄이 출연했다. '정우성이 만난 난민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란 에세이도 펴냈다.


어디 그뿐인가. 같은 해 70주년을 맞은 제주4.3을 알리기 위한 동백꽃 배지 캠페인의 홍보대사로 발벗고 나섰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나 소방관 GO 챌린지, 노플라스틱 챌린지에 두루 동참하며 유엔난민기구 친사대이자 동시에 유명인의 사회적 참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친선대사 자격으로 같은 대사인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도 회동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연말 민족문제연구소를 찾은 정우성은 그간 여러 차례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한국 현대사가 결국 현재 뒤틀린 한국사회의 근원이자 뿌리라고 밝혀왔던 소신을 직간접적으로 '인증'했다. 더 놀라운 것은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했던 용기였다. 그 용기의 연원은 일종의 부채감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사인 앤젤리나 졸리가 3일 서울시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서울사무소에서 UNHCR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을 만나 세계 난민현황과 올해 5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처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11.4 ⓒ 유엔난민기구


"(제가) 어느 순간부터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결국) 세월호와 연관돼 있지 않나 싶다.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제 또래 세대들은 어린 친구들에 대한 감정적 부채가 클 것이다." (2018년 7월 제12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정우성 특별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우성)


책임감, 그리고 세월호. 2018년 '올해의 인물'로 꼽힌 한 시사주간지 표지를 장식한 정우성의 한 마디는 "자선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활동도, 부지런했던 사회 참여 모두 자수성가한 이가 보여줄 만한 자선 활동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가지는 책임감과 부채감, 미안함이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소신의 피력이 한 두번도 아니었다. 다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허리 세대인 40대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고, (세월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며 "세월호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정우성은 같은 해 4월 개봉한 세월호 참사 소재 다큐 <그날, 바다>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런 정우성이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지난 22일 언론 보도를 통해 그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직을 내려놓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지난 2015년 6월 17일 정우성을 대사직에 임명했으니 9년 만이다. 그에 앞서 정우성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부터 첫 번째 미션지인 네팔을 시작으로 부탄, 소말리아, 파키스탄 지역 난민을 만났고, 이듬해 아프리카 남수단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4년이란 시기가, 또 올해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란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실제 그랬던 것 같다. 친선대사직을 사임하며 한 시사주간지와 인터뷰를 가진 정우성은 대사직 수락 당시를 돌아보며 "세월호 참사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동기가 계속 밀려오고 있었습니다"며 "이런 제안이 왔을 때, '준비가 돼 있나' 스스로 물으면서 도망갈 이유를 찾지 말고 일단 부딪혀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게 무엇이 됐든지 시작하면 오래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습니다"라는 답을 내놨다. 


그런 그의 10년 간의 특별한 활동은 책임감을 지닌 '좋은 어른' 되기의 다름 아니었던 듯 싶다. 그가 내는 목소리나 발언 하나 하나에 신중함이 묻어났다.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균형감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자선이나 선행이 아닌 공감과 보편으로서의 행동이 수반됐다. 자신이나 기구에 가해진 정치적 공격의 정체나 영향 역시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정우성은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6년 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해 "난민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가까이 들여다볼 용기의 부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라며 이렇게 부연했다. 세월호 참사부터 저 멀리 제주4.3까지 언급하는 적확하고 유연한 설명이었다.


"한국 사회를 보면 제주 4.3사건, 세월호 등 여러 사회적 참사에 대해 그 원인과 피해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한 적이 사실상 없잖아요. 우리 시민들이 타인의 고통에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인데요.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할 때, 그 과정에서 더 큰 아픔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또, 난민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어른 정우성의 책임감, 그리고 배우로서의 열망

   

▲ 영화 '서울의 봄'으로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정우성이 지난 5월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정우성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을 다짐하는 중이다. 그의 10년은 다소 구태의연한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의 조지 클루니'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정치적이었다. 그 와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배우로서의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리어 정치(政治적인) 시선을 작품 선택의 선구안에 녹이는 정치(精緻)한 행보를 걷고 있다. 


최근작들의 면면이 실제 그랬다. 정우성은 검사 공화국 시대를 예언한 <더 킹>에선 특수부 정치검사 역할을 능글맞게 소화했다. 근작인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연기했고, 의리로 뒤늦게 합류한 <날아라 개천용>에선 사회 고발에 앞장서는 기자로 분했다.


'좋은 어른'에 대한 열망도 캐릭터로 승화됐다. 그에게 백술예술대상을 안긴 <증인> 속 정우성은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인권 변호사였다. <강철비2: 정상회담>에선 국민의 안위 만을 염려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절친' 이정재가 연출한 <헌트>에선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군 출신의 강직한 안기부 요원을 연기했다. 자신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보호자>에서조차 어린 딸을 지키려는 킬러로 분할 정도였다.


대체로 강직한 소신주의자의 면모가 묻어나는 캐릭터들이다. 지난 겨울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 속 이태신 장군은 그런 정우성의 배우로서나 인간으로서 열망이 절정에 달한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속 인물들을 합쳐 만든 가상의 캐릭터 이태신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보유하면 할수록 좋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 '좋은 어른'의 현신 아니겠는가.


결국 온전한 배우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정우성의 10년은 우리 배우들 중 그 누구도 나아가지 못했던 발자취라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발자취는 독보적인 동시에 겸손했다. 동시에 본업에서마저 성실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를 겪은 40대가 50대 어른이 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들'로 돌아온 손석희, 친절함은 사양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