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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곡차곡 Aug 10. 2019

유리멘탈 엄마의
산후 육아우울증 극복기 - 정신편 -

제가 극복했다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제 성격부터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저는 음악, 소설, 영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 아주 감성적인 편이기도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옆 사람을 붙잡고 나 정말 힘들어!!! 하며 티를 내야 직성을 풀리며 앞 날을 사서 걱정하는 버릇이 있고 가만히 앉아서 무엇가를 20분 이상 진득하게 하는 것 못견디는 편입니다. (이렇게 글로 기술하고 나니 새삼 남편에게 미안해지는 건 왜일까요)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는데 이게 웬걸.. 산후조리원에서는 도우미 선생님들께 신생아 돌보기 배우며 동기들도 사귀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서서히 엄마가 될 준비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몸조리를 하면서 별의별 안좋은 생각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 눈물이 나더군요.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보통의 엄마들의 걱정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회사에 가나. 그만둬야 되는 거구나. 나는 지금까지 뭘하며 살았나. 이것저것 하면서 돈만 썼지 나는 회사를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엄마가 되면 다 포기해야 하는구나 (무슨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제 남편과의 여행은 당분간 꿈도 못 꾸는구나 철없는 생각까지..


산후우울증을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지독했고 또 오래 겪었습니다. 무슨 자신감에서 겪지 않을 줄 알았던건지.. 생각해보니 저는 산후우울증에 걸릴 최적화된 사람이었었는데 말이죠. 

산후도우미 이모님 앞에서도 울고 또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할 친정엄마 앞에서도 결국 울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의 딸은 12개월이 지나 저도 돌끝맘이 되었네요.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느닷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저만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산후우울증을 겪게 되실 그리고 겪게 되실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하여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이야 호르몬의 장난이야

앞에 기술했던 것과 같이 저는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에 걸릴 최적화된 사람이었어요. 그저 아이가 좋아서 내 아이를 키우게 될 생각에 우울증에 걸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도에 벗어난 정도였습니다.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나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눈물을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나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최대한 아기 앞에서는 안울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싶었어요. 알고 보니 아기를 낳고 엄마에게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해요. 임신 중에는 피로를 덜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다가 출산을 하게 되면 이 호르몬이 줄어들죠. 출산 1~2주에 심하다가 서서히 회복되는데 요즘에는 산후우울증(maternity blue)는 일반적인 현상일 만큼 어찌보면 당연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단지 그 기간이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영역 밖의 일인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더 이겨내기가 수월해졌습니다. 내 정신이 약해서 그런게 아니야. 나의 영역밖이야. 이 시기가 지나가면 괜찮아지는건 분명해. 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흐름에 맡기게 되었어요.



염치없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육아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조언이 있습니다. 최대한 주변 인력에게 도움을 청하라구요. 심지어 아이 발달에 관한 책에서도 한꼭지씩 꼭 '엄마의 휴식'에 관한 코너를 마련해서 엄마가 꼭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양육자가 행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더라구요. 

남한테 신세지는 것 싫어하는 분들 있죠? 남한테 맡기는 것 못미더워하고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요. 저도 그런 편입니다. (글을 쓰면서 보니 저는 안좋은 성격 집약체네요) 그리고 특히 타인에게 신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구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많이 열렸습니다. 내 몸이 힘들다보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어요. 내가 살아야 아이를 키우니까요. 다행히 친정엄마가 가까이 살고 계시고 아버지도 첫 손주라 아이를 너무 예뻐하셔서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셨습니다. 사실 손주가 예뻐서도 있겠지만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안쓰러워서 도와주시는 것 같습니다. 친정 부모님이나 시댁 식구들이 안계신 경우도 있지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기 힘드신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는 더 많이 힘드실거에요.. 그럴수록 다 내가 책임지고 키워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시고 최대한 주변에 활용할 수 있는 인력(?)에 도움을 요청하시고 10분 20분이라도 집 앞 카페에 가셔서 멍때리거나 잠깐의 낮잠 시간을 갖는 것을 강력 추천 정도가 아닌 필수! 의무 사항으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친정엄마와 같이 아기를 볼 때 몇번을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엄마는 나 볼 때 안힘들었어?" 

"난 하나도 안힘들었는데? 난 지금도 너랑 이렇게 집에서 윤이 보는게 너무 행복해"


이런 친정엄마가 계셨으니 '왜 아무도 나한테 안알려줬어?'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요. 엄마는 참 예외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모두들 육아가 제일 힘들다고 해요. 물론 해본 사람 중에서요. 그런데 SNS나 미디어를 보면 나만 힘든 것 같아요. 나만 이렇게 육아에 애 먹는 것 같고 나만 징징거리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무거워져요.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힘들어서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친구도 힘들어요. 다 얘기하지 않는 것 뿐이더라구요. 저는 힘든걸 숨기는 편이 아니에요(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다 드러내는데 이런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또 숨길 순 없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말로 풀며 위로를 받았어요. 그런데 5명이면 5명 다 힘들더군요. 그렇게 행복하고 쉬워보였는데 알고보니 다 힘들어요. 그러니 겉모습만 보고 나의 처지를 비관하지 마세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때로는 약의 힘(?)을 빌려요

요즘 같은 시기에 위험한 발언인가요.. 엄마들의 특징. 깜빡깜빡 잘하죠? 특히나 영양제 챙겨먹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요.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지만 영양제 특히 비타민C나 비타민D 영양제 먹고 나면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요. 본인 체질에 맞는 한약이나 산모들이 많이 먹는 흑염소 같은 것도 잘 알아보시고 드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몸을 잘 관리를 해 둬야 아이를 더 오래 옆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약의 힘을 빌려 체력관리를 잘 해 두는 것은 필수에요. 한약도 젊었을 때 먹어야 더 효과가 있다고 하죠? 출산 직후에는 몸이 안좋을수록 좋은 약들을 더 잘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저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의 몸 상태가 육아의 질을 결정하고 또 정신건강을 좌우하잖아요. 낮잠을 10분만이라도 개운하게 자면 아가랑 놀아줄 힘이 마구 생기더라구요. 


나를 아낌없이 내어드리리

아기를 키우면서 특히 신생아를 키울 때 가장 힘든 문제가 양육자의 수면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밤에 2~3번 깨는 건 기본이고 육아책에선 하루에 18시간을 잔다더니 낮잠은 1시간 자면 감사합니다 했었어요. 저는 정말 수면부족이 치명적입니다. 정신력이 약해서인지 잠을 제대로 못자면 그 다음날 별것 아닌 일에 곤두서고 예민해요. 새벽에 겨우 재우고 잠들었는데 3시간 뒤에 또 울어대는 아이. 수유하고 재우는데 길게는 1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언제자나 제발 자라' 주문을 외우며 반수면 상태에서 계속 자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어요. 그러면 잘 것 같다가 다시 안잘 때는 그렇게 짜증이 나더군요. 내가 자라고 자라고 재우려도 애를 아무리 써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 안자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아기가 새벽에 앙 울어대면 '그래 모르겠다 하고 싶은대로 하렴' 하면서 모든걸 포기하고(?) 옆을 지켰어요. 아기가 얼른 자길 바라는 마음을 아예 비우고 포기하니 오히려 빨리 잠드는 것 같아 감사하더라구요.


수월해 지는 시간은 반드시 온다

한창 힘들 때는 이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어요. 내일도 모레도 똑같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새 정신차리고 보니 조금씩 육아가 손에 익고, 어제 오늘이 다르게 아이가 커 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그렇게 힘들어하던 제 모습이 민망해지더라구요. 순간 화가 나서 욱했다가도 아이 재우고 몸이 좀 편해지면 또 곧바로 후회하고.. 육아가 손에 익기도 하고 또 이쁜짓을 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면 좋겠기도 하고..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옵니다. 시간은 참 무심하게 잘 흘러가요. 그러면 힘들게만 보냈던 시간이 후회되기도 할거에요. 저는 후회보다 미련한 감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후회를 많이 해봐서 그런가봐요) 


순간 화가 나거나, 아니면 이렇게 힘든 시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을 때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수월해졌을 때를 한 번 상상해보세요.
그러면 조금 더 그 순간을 참아내기가 편해지더라구요.


공동육아의 힘

아줌마 셋만 모여도 정신없는데 애들 셋도 같이 모이면 어떨까요? 정말 정신이 없어서 오히려 시간도 금방 가고 우울감에 빠질 시간도 없답니다. 저는 다행히 같은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들이 있어서 자주 시간을 맞춰 집에서 모여서 공동육아를 했습니다. 같은 시기의 아이들이 모여서 꼬물거리는 모습만 지켜봐도 경이롭더라구요. 공동육아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기의 아이들이다보니 아이들끼리 비교하기가 쉬워져요. 아이들이 어릴 수록 발달편차가 정말 큽니다. 어떤 아이는 기고 어떤 아이는 이가 몇 개 더 나고 어떤 아이는 잡고 서구요. 아이들끼리 비교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헤어지고 나서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어서 아이가 느린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에 우울감이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비교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편이라면 공동육아는 정말 즐거워요. 엄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문화센터에 다니고 공원으로 나가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아이가 발달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즉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해야 공동육아가 즐겁습니다. 어차피 몇 년만 있으면 아이들은 다 뛰어다니고 다 말을 한답니다. 건강하게 문제없이 크고 있다면 기다려주고 격려해주세요.



지금에야 우울증 극복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경험을 쓰고 있지만, 한창 우울했을때는 참 힘들었어요. 멘탈이 약한 편이라서 이겨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가고 괜찮아지는 시기가 오더라구요. 저와 같이 육아가 힘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용기 내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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