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혼 Oct 26. 2023

문지방 위에 선 숫자 6 같은 사람



 문지방 위에 서 있을 때면 어김없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지방 밟지 말랬지.”  

 그러면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천천히 발을 내린다. 나의 작은 두 발이 방 너머든, 방 바깥이든 안착해야 엄마는 한숨을 쉬며 뒤돌아 멀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해 계속 문지방을 밟았다. 왜일까, 방 너머도 방 바깥도 아닌 그곳이 내게는 가장 마음 편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문지방을 밟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때문에 스스로를 평가할 때도 '10점 만점에... 6점 정도?' 하며 애매한 숫자를 내놓았다. 높은 점수도 낮은 점수도 아닌 애매한 숫자 6은 마찬가지로 모호하기만 한 ‘나’라는 사람을 평하기에 퍽 알맞은 숫자라고 생각하며,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사람치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평가 아냐?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주 어릴 때는 문지방 같은 내가 싫었던 적도 있다. 왜 나는 삼 남매 중 하필이면 둘째로 태어나서,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여자로 태어난 주제에 남자아이들이 갖고 노는 파란색 로봇을 좋아했을까. 그러면 거울에 비친 엄마와 아빠가 반씩 섞인 얼굴이 내게 말했다. 

  ‘너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거야’라고. 

 그렇게 나는 늘, 당연한 듯이 문지방이라는 경계에 서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쳐지지 않은 채.  

 

 

 그래도 잘하는 것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렸다. 왜, 있지 않은가. 학교에 가면 같은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수업 안 듣고 그림만 그리는 애. 나는 거기서 그 ‘애’를 맡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를 하면서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온통 만화 생각만 가득했다. 마침내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는 신이 나서 그대로 집으로 달려가 그날 그릴 만화그림을 서치해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해가 질 때까지 정신없이 그림만 그리는 것이다. 그 시간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모호하기에 늘 타인을 돌아봤고 나보다 명확해 보이는 이들이 생각 없이 건네는 훈수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거렸다. 머리가 커지고는 그러지 않으려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게 그만 나만을 보는 사람이 되어 타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게 되었다. 다른 건 다 애매하게 중간을 지키면서 타인과 나의 경계에선 어찌나 선을 모르고 넘실거렸던지. 그런 나를 다시 잡아준 건 뜻밖에도 만화였다. 




네이버 베스트도전 <망상소년> 中




 만화에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주인공,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 주인공의 조력자... 나는 다양한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해야 했고, 나 자신을 지키며 타인을 관찰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사람들의 습관, 취향, 성장과정에 대해 가늠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문지방 위에 서있더라.     



 나는 여전히 문지방 같은 사람이다. 아침엔 만화를 그리고, 오후엔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는 오롯이 내가 되는 모호한 사람. 한때는 내가 지닌 ‘정의할 수 없음’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안다. 어린 시절 엄마의 눈을 피해 문지방 위에 섰을 때 느꼈던 평온함은 내가 온전한 나로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평화였음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