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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혼 Oct 30. 2023

언니가 찍은 사진만큼만



 우리 언니와 나는 성향이 완전 반대인 편이다. 휴일에 친구를 만나도 어디서, 무엇을, 몇 시에 만날지 계획부터 하고 보는 나와 달리 언니는 꽤 느긋한 편으로, 나란히 길을 걷다가도 돌아보면 좌판대의 선글라스나 누워있는 길고양이에게 한눈이 팔려있곤 했다. 한때 언니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괴롭히는 사람이자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었으나 신기하게 나이를 먹으니 오래된 친구마냥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잠자리에 예민한 편인 내가 유일하게 한 침대에 뒤엉켜 잘 수 있는 사람도 언니뿐이니 우리의 자매관계는 꽤 좋은 편에 속할지 모르겠다.


 대전에 사는 언니는 가끔 전시회 등을 구경하러 서울에 놀러 오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우린 팔짱을 끼고 걸으며 국제도서전이나 영화를 관람하고, 언니가 좋아하는 카페투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반대성향인 것에 비해 책 읽기나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공통사가 많았던 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재미있어서 화제가 끊겨 곤란한 상황은 여간해선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씩 언니와 내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여겨질 때가 종종 있었다.                                                           






 언니는 사진을 잘 찍었다. 같은 휴대폰으로 같은 풍경을 보며 찍어도 언니의 사진은 단연 돋보였다. 그럴 때면 카메라가 세 개나 달린 내 휴대폰이 무색해지곤 하였다. 분명 같은 것을 보았는데 어째서 언니의 사진에는 테이블 위에 앉아 빵을 훔쳐 먹는 새가, 햇볕아래 몸을 둥글게 만 고양이가, 길모퉁이에 핀 예쁜 들꽃이 있는 걸까. 

 언니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행복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곧바로 만화작업을 하고, 오후에 아르바이트에 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또 만화작업을 한다. 잠드는 시간이나 일어나는 시간은 늘 제각각이고, 24시간 중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은 단 1초도 없는 하루. 머릿속은 온통 만화생각뿐이면서 정작 눈앞에 핀 꽃은 보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내 삶은 꿈을 쫓는다는 거창한 행위라기 보단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과,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일은 언니와 나의 성향처럼 아예 다른 문제인가 보다.


 어김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는 문득 이런 두려움에 휩싸인다. 내가 무미건조한 탓에 내 만화가 무미건조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집을 박차고 나와 무작정 동네 산책이라도 시작하지만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내 하루는 여전히 나 같고, 행복이라는 건 언니가 찍은 사진처럼 내가 가질 수 없는, 내 손으로는 포착해 낼 수 없는 어떤 비물질적 형상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딱 언니가 찍은 사진만큼만. 딱 그만큼만 살아보자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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