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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진 Oct 21. 2019

서기 2000년이 오면

2020년을 코앞에 둔 지금, 2000년을 생각한다.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서울, 2019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 작가를 만난 지 일 년이 흘렀다. 그사이 볼프강 한 미술상 수상, 런던 테이트모던 소장 소식이 들려왔고 지금 작가는 뉴욕과 마이애미,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작업을 선보일 날을 앞두고 있다. 그에 앞서 9월 3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의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국내 전시다. 


2020년을 코앞에 둔 지금, 2000년을 생각한다.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는 가수 민해경이 1982년 발 표한 노래 ‘서기 2000년’에서 비롯되었다. 노래를 만든 이는 어떤 2000년을 꿈꿨을까. 과거와 미래 의 시점이 동시에 녹아 있는 시간 앞에서 양혜규 작가가 문화와 시간 개념에 접근하는 다원적인 태도를 읽는다. 전시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 작가는 일상적인 어휘를 반복과 상호 교차하며 뒤얽는 어법을 사용한다. 역사와 문화, 사회의 면면이 그 안에서 드러난다. 작가가 어릴 적 두 동생과 그린 그림, ‘보물선’처럼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인의 기억을 되짚기도 한다. 혹은 관습적으로 분류되거나 의도적으로 간과된 집단적 의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유년의 상상을 재현한 듯한 전시 전경 앞에서 오감이 확 열린다. 소리와 움직임 등 감각적인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내는 화음들이 쌓인다. 


작품 <배양과 소진(2018)>은 지난해 프랑스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공개된 작업이다.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Occitania 지역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양파와 마늘, 무지개, 번개, 의료 수술 로봇, 짚, 방울 등이 각양각색 설치된 작품이다. 이는 문화와 민속을 획일화된 분류법으로 나누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관람객의 참여를 끌어내는 작업도 여럿 보 인다. 전시장에는 바닥과 벽에 설치된 장기판 2개를 잇는 일종의 ‘중간지대’가 설치된다. 한쪽에는 향기가 나는 짐볼이 설치되는데 관람객은 이 짐볼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앉을 수 있다. 다차원적 공간 에 위치한 <솔 르윗 동차動車>는 기존 블라인드 작업에 동적 요소가 더해졌다. 양혜규 작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공간과 공간을 구분 짓는 동시에 개방성을 지닌 블라인드를 작업에 사용해 왔다. 이 연작은 미니멀리즘 작가인 솔 르윗Sol LeWitt의 입방체 구조를 확장한 작품 <솔 르윗 뒤집기(2015~)> 연작과 관람객이 조각 내부에 들어가 움직이는 <의상 동차動車(2011~)> 연작을 합친 듯한 모습이다. 다만 이전에 <솔 르윗 뒤집기>는 솔 르윗의 모듈식 구조를 천장에 매단 조각물이지만 이번 작업은 두 개의 모듈 구조를 기립 시켜 외부에서 이를 조종하게 했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와 작곡가 윤이상의 연대기를 주관적 관점으로 교차 편집한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작업에서 두 인물을 종종 참조해 왔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이 겪은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는 그들의 생애로 표출된다. 양혜규 작가는 자본주의와 합리적 태도 속에서 쇠약해진 자연과 수공의 가치를 짚는다. 또한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이야기한다. 지금도 그의 작업은 세계 곳곳에서 호출되고 있다. 10월 21일 뉴욕 현대미 술관MoMA은 재개관을 맞아 그의 대형 설치 작업 <손잡이>를 선보이고, 11월 2일 마이애미 배스미술 관에서 개인전 <불확실성의 원뿔In the cone of Uncertainty>이 열린다. 내년 여름에는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 분관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으로 그의 분주한 행보를 짐작한다.




Editor 이소진

도움 국제갤러리

<ORDINARY> Magazine 30호 'Artist'에 소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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