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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sso Jun 30. 2016

땡땡 엄마가 좋음

  아이를 낳은 후 자기 이름보다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게 돼 싫다는 여자들도 있지만 나는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좋다. 우리 아들의 엄마라서 행복하다는 그런 간질간질한 얘기가 아니고 엄마들의 사회에서 누구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동등함과 익명성이 좋다.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나이불문 모두 누구 엄마로 부른다.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도 그냥 땡땡 엄마로 불러줄 것을 부탁한다. 개중에 누가 '땡땡 엄마는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언니라고 안 하고 꼭 누구 엄마라고 부르더라'고 흉을 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보니 우리 사회는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질서에 기대어 관계의 우위를 점하거나 대접받으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성향상 그런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해외 출장을 다녀보면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사람들을 좀 더 격의 없이 대하고 일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출장지에서 몇 번 만난 카를로스 할아버지는 작은 키에 호리호리하고 희끗한 수염이 덥수룩한 브라질 사람으로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한 팀원으로 그 분과 일하거나 대화하는 데 나이차로 인한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영어로 인한 불편함만이 -_-) 그 출발점은 역시 호칭이라고 생각된다. 카를로스 할아버지가 아닌 카를로스라는 호칭이 우리가 서로 동등한 관계로 대할 수 있게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전 임직원이 모두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회사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게 땡땡 엄마는 이 영어 이름과 같은 효과인 것이다. 존, 메리 등으로 부르는 부끄러움에 익숙해지지 않아도 되고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인 누구 엄마라고 부르고 불려지는 동등한 관계의 시작을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아이로 인해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관계는 1차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아이가 대표가 되는 관계인지라 땡땡 엄마라는 호칭은 굳이 나를 무차별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되게 하여 좋다. 엄마들의 사회가 가지는 속성은 참으로 애매한데 일적인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개인적인 관계도 아니어서 내게는 이 호칭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한다. 언니 동생 하게 되면 내 동의 없이 그 가이드라인이 무너지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로 인해 만났더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자연히 서로를 드러내며 알아갈 테니 그전까지는 땡땡 엄마로 족하다. 나의 정체성은 땡땡 엄마로 깎이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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