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Jan 06. 2023

퇴사 에필로그-소시오패스로부터의 연락

  이직 첫 날 오후, 전 회사에서 직원A로부터 연락이 왔다. 직원B가 나에게 확인해달라고 해 연락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 직원B라면 대수롭지 않으니 넘어가자고 했을 일에 대해 물어봤다. 애초에 왜 그 서류가 직원A의 손에 있는지도 의문스러웠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직원A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기에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직원B에게 연락했다.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직원B는 어이없어 하며 직원A가 나에게 연락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너머로 "A 완전 미쳤네."라는 직원B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연락할게요."

  "전화 안 받을 거예요. 연락하지 마요."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도 안 돼요?"

  "업무가 생각 날 거 같아서요."


  나의 선긋기에도 불구하고 직원A는 기어이 첫 날부터 나에게 연락했다. 다른 직원이 시켜서 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그에게 진실한 순간은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어제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가 다음날에는 자신이 그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고 우기는 모습을 보며, 직원A가 리플리 증후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유튜브에서 심리학 영상을 보며 그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빼먹는 데 실패한, 멍청한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뭐였든 무슨 상관인가. 유해한 사람이라는 건 자명해졌다.


  퇴근 후 가족들에게 이 괴상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직원A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반인에게 직원A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사람일 뿐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직원A가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팔면서 나에게 불필요한 연락을 했다는 게 모두에게 공유됐으니 그는 더 이상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좁아진 팀 내 입지는 이제 점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이라 갈까 했는데 귀찮더라구요."

  "내가 산책 가자고 한 게 그래서예요. 일단 나가면 따라가게 되는데 죽어라 안 나가."


  워크숍 다음날, 내가 2차 장소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하자 직원A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거짓말을 고백했다. 그 말이 나를 얼마나 소름끼치게 하는지 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추워서 나가기 싫다는 나에게 집요하게 밤산책을 권했다. 2차에 안 가겠다고 말할 때도 그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자기가 가고 싶으니까 쌤한테 가자고 한 거지."


  이야기를 들은 직원B는 심플하게 이 상황을 정리했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배가 부르면 더 먹지도 못하며, 일찍 잔다. 그런 이유로 나는 거의 모든 2차 자리에 빠졌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밤산책을 하겠다고 홀로 남은 그는 아무도 동행을 권하지 않아 호텔 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왔다.




  직원A가 목표달성에 실패한, 멍청한 소시오패스라고 생각한 건 매순간 그의 거짓말에는 나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는 목적의식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팀원 사이에서 나를 고립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이간질을 시도했다. 굳이 직원B를 팔아 나에게 연락한 것도 이간질의 연장선상이었다.


  그에게 내가 한순간도 도구이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업무에 있어서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또한 자신의 감정쓰레기통으로써도.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그에게 나는 퇴사 후에도 쓸모있는 도구였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퇴사 후 그와 관계를 끊었다. 아마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적절한 거짓포장지에 여 연락을 끊게 된 이유의 꼬리표가 붙겠지.


  세상에 사람은 다양하고, 나는 아직 멀었다는 걸 직원A를 겪으며 깨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구제불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