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L Mar 03. 2023

도서관은 아날로그적 공간인가?

  "컴퓨터 할 줄 몰라요. 해줘요."

  "직접 하셔야 되세요. 저희가 직접 해드릴 수 없어요."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노인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아침이면 오픈 시간이 되기도 전에 종합자료실에 들어와 신문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는 이용자들이 있고, 귀가 들리지 않아서 필담을 해야 하는 이용자와 어제는 노안을 이유로, 오늘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책을 대신 찾아달라고 하는 이용자들이 많은 곳이다.


  이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묵묵히 해주면 사서는 편하다. 실랑이할 필요가 없으니 기계적으로, 사무적으로 요구사항을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이용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인력이 몹시 부족한 상태다보니 자료실 관리자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이용자 대응방식이 달라진다. 도서관은 반 년 전 리모델링한 후 이용자가 다섯 배 늘었다. 현재 관리자는 사서들에게 친절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어디까지일까? 이용자가 직접 책을 찾도록 안내하고, 청구기호 보는 법을 교육한다.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다짜고짜 데스크로 오는 이용자에게 검색대를 이용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이때 이용자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뉜다. 첫째, 할 줄 몰랐는데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는 다음에는 직접 해보려고 재시연을 요구하기도 한다. 둘째, 하기 싫지만 투덜대면서 마지못해 수행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키보드는 치기 싫고 책도 사서가 직접 자기 앞에 대령해주길 원하는 이용자들이다. 셋째, 끝까지 못한다고 거부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세 번째 타입에 있다.


  "법 관련 책은 어디에 있어요?"

  "300번대에 있는데, 어떤 법에 대해 찾으세요? 검색대에서 정확하게 찾아보시고 이용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행정법이요. 컴퓨터 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물어 보는 거죠."


  한참 후 이 이용자는 데스크로 돌아와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회원가입 PC를 통해 책이음 회원가입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는 "컴퓨터 할 줄 몰라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대신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개인정보 접근 및 업무(직원이 나밖에 없었다)를 이유로 거절했다.


  "그럼 다음에 와서 할게요."


  그는 그렇게 도서관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회원가입을 대신 해주는 다른 도서관으로 갔을까? 아니면 언젠가 돌아와 다른 사서에게 회원가입을 대신 해달라고 말할까?




  그를 그렇게 보낸 후 며칠 동안 나는 내가 맞게 응대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컴퓨터에 접근조차 하지 않고 돌아간 이용자는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컴퓨터에 악마라도 씌인 것처럼 1미터 이상 간격을 유지했고 마우스 클릭이나 키보드 타이핑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시도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과도하게 어려움을 겪는 이용자의 경우, 옆에서 지켜보다가 직접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도울 공간조차 열어주지 않고 가버렸다.


  "할 줄 몰라요."


  나는 그 말이 "하기 싫다"로 들렸다. 무스를 발라 곧게 세운 그의 검고 짧은 머리와 햇빛에 그을린 팽팽하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 그만큼 에너지틱했던 붉은 등산복 상의와 목에 두른 멋드러진 손수건을 떠올려 본다. 그는 아마도 법적으로 노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모임에 가면 젊게 산다는 칭찬에 우쭐해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배우지 않으려는 내면은 남들보다 늙어 있었다.


  "미안해요. 귀찮게 해서."

  "저한테 미안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앞으로 더 오래 사실 건데 배워두셔야 편하시잖아요."

  "그래요. 고마워요. 꼭 배울게요."


  웃으며 화답하던 백발의 이용자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볼 때마다 발전되는 기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더 많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이 가르쳐 주면 좋겠지만, 그런 훈훈한 장면은 흔치 않다. 되려 정확하게 알아보지 않고 부모님을 대신 보내 고생시키는 자식이 더 많다. 사회가 나서서 노인을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노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늘 배움에 열려 있어야 한다.




  가장 아날로그해 보이는 책을 사고 빌리는 일도 이제 더는 아날로그적이지 않다. 최근의 일인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도서관은 이십여 년 전부터 기계화, 전산화되고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무인대출반납기가 있었고, 컴퓨터로 책을 검색하고 청구기호를 출력해 책을 찾았다. 사서의 주업무가 책을 찾아 건네주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다.


  "내가 직접 찾아야 돼요?"


  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누군가 중에는 사는 게 너무 팍팍해서 이십여 년이란 세월을 훌쩍 지나서야 책을 만질 수 있게 된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할머니였고, 할아버지였다. 그저 도서관에 가입하고, 책을 찾는 법을 배우며 해맑게 웃는 분들을 보면 그 사실에 가끔 가슴이 먹먹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약, 먹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