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에 대하여
외국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동안 이슈.
스스로를 자랑하듯이 동안이라 하는 건 그러니까 꼭 동안에 대해서가 아니라도 자기 입으로 막 자랑하는 걸 나는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입으로 동안이라 말하는 거 좀 별로지만 이건 자랑이 아닌 사실인 관계로 언급해 본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도 동안이라는 얘기를 항상 들어왔었는데, 아마도 아웃핏이랑 목소리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외국인들도 동안이라는 칭찬은 엄청 좋아한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독일에 살고 있는 관계로 새로운 누군가를 알게 될 때마다 내 나이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항상 똑같은 반응으로 엄청 놀라 한다.
심지어 친구가 나를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줄 때 매번 있는 질문, 내 나이를 맞추라고 한다.
대부분 다들 대략 내 나이가 어리지 않겠구나를 눈치채고 자신이 예측한 것보다 높게 나이를 부른다.
그럼 질문한 친구는 막 신나 하면서 마흔한 살이야라고 얘기하며 상대를 놀라게 했다는 것에 뿌듯해한다.
이게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고 좋았는데, 계속 지내다 보니 이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먼저 내가 실습하고 있는 유치원에서는 동료들이 나를 다 이십 대 초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 내 외모가 그 정도로 심하게 어려 보이는 건 아니고
아무래도 아우스빌둥을 하니까 다들 그냥 학생이겠거니 생각했나 보다. 암튼 그때 실습하던 반에 가나 출신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약간 다른 사람에게 뭐 시키거나 부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까 만만한 사람한테.
나한테도 당연히 사소한 걸 부탁했었는데,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보다 그냥 들어주는 편이 좀 더 편했던 시기라서 어지간하면 해줬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서 넉 달 정도 지났을 때였나 우연히 서로의 나이를 오픈하는데, 내가 다음 달에 마흔 살이 된다라고 하니까 그녀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이 엄청 놀랐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나에게 사소한 부탁을 하지 않았다.
이성을 만날 때 나이가 중요하다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상대가 기대한 나이가 아닐 때 오는 나름의 부작용이 있다.
내가 비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대형 슈퍼마켓에 딸린 스시 매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진짜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맨날 울면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러던 어느 날
창고를 가는 길에 너무 멋진 남자를 발견했다. 키는 190센티 정도에 내가 좋아하는 슬랜더 체형 그리고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독일인들과 다르게 스타일이 정말 좋았다. 그를 발견한 이후로 일하러 가는 게 어찌나 즐겁던지, 오며 가며 그와 인사하고 아이 컨택을 주고받고 하던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드디어 그와 커피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그가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어릴 거는 예상했지만 여기는 유럽이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자하고 생각했던 터였었는데, 그 나이가 바로 문제가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었던 것이다. 이제 하다 하다 2002년 생이라니, 그때 나는 역삼동에서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르네상스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김남일 선수를 보았네 어쩌네 그러고 있던 때인데 허허
뭐 여기서 나만 놀랐을까 그도 내 나이 듣고 역시나 놀랐다. 그는 내가 스물일곱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응 그래 고마워.
여하튼 나는 동안인 게 딱히 장점으로 경험한 사례가 없어서 그런지 들었을 때 더 이상 기쁘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에게 칭찬으로써 동안을 언급할 때
나는 ”한국의 코스메틱이 이렇게나 훌륭해 “, ”나는 남편이 없고 아이가 없잖아 “ 이렇게 답한다.
그럼 다들 깔깔거리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