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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Apr 25. 2024

12 인하우스와 대행사, 어디에서 일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기획'을 할 것인가

나는 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 경력을 보자면 이제는 인하우스에서 일한 시간이 좀 더 길어졌는데,

아직도 나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은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대행사


국제회의기획사로 대행사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대행사가 뭔지, 인하우스가 뭔지 사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나에게 맡겨진 프로젝트들을 소화해 내기에도 급급했고, 그때에는 그냥 모든 것을 가치판단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했기에 관련된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하루하루 내 프로젝트들이 잘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순간들이 다 너무 행복했고, 여러 어려움이 닥치면 당황하지 않고 해결해 나가는 것만이 나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이라고 여겼고, 전쟁터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전리품을 얻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아 난 이제 이런 것도 해냈어'라는 성취감에 도취된 나날을 보냈다.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은,


클라이언트와 팀이 계속 바뀐다는 점

다양한 프로젝트와 분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기획하고, 운영하고, 마무리하는 일로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던 점


뭐든 맡겨주면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과 그리고 빠른 업무처리 스킬

한 번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멀티태스킹 능력

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빡빡한 스케줄을 관리하는 능력 등


지금의 내가 '직장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수많은 좋은 업무습관은 거의 다 이때 형성이 됐다.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단점이라 생각했던 부분을 말하자면, 


극악한 업무환경(야근의 연속과 적은 임금)

가끔씩 발생하는 갑질의 현장

대행사에 대한 안 좋은 인식

프로젝트별로 꾸려지는 팀 안에서 계속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문제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점


그리고 대망의 '체력의 한계'였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행사가 잘되면 내 클라이언트는 승진을 하는 등 성과를 인정받아 뭔가 변화가 생겼지만, 행사가 끝나면 우리끼리 사무국에서 고생했다고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또 다음 행사로 넘어가는, 그냥 루틴 한 일이었다.




인하우스


대행사를 두 곳 정도 다닌 후에 나는 인하우스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의 경험이 워낙 강렬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어찌 됐든 인하우스의 맛을 보고 나서 대행사와 인하우스 중 중 진로를 선택하고 싶었다. 대리급 정도의 연차가 쌓여있었지만, 신입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하우스로의 길을 택했다.


연봉을 포기하고 들어간 인하우스는 내게는 매우 달았다.

입사 때 포기했던 연봉은 2년 만에 거의 1.5배 가까이 올랐고, 직급도 사원에서 시작했지만 이년만에 주임을 거쳐 대리로 승진했다. 인하우스에서는 디테일한 실무를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채워주는 나를 좋게 봐주셨기에 그런 성취가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있던 인하우스에서는 대행을 맡기지 않고 관련 업체만 계약해서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인하우스에서 하는 일은 내가 대행사에서 하던 일과 거의 같았다. 그래서 업무적으로 크게 차이는 못 느꼈다. 다만 대행사에서 일할 때는 알지 못했던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고민해야하는 내부 사정들행사 기획과는 무관한 다른 종류의 업무 영역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은 내가 향후에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바운더리를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인하우스로 옮기고 좋았던 점은,


맡은 프로젝트들을 장기간 추진해 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음

'콘텐츠' 자체에 집중해서 기획할 수 있음

내 의견이 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게 됨

더 이상 무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내 성과로 남았다는 점

거기에 워라밸까지.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때와는 달리,(인하우스에서도 야근은 있었다)

내가 조정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어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내 기준에서 단점이라면,


업무 자체가 기본적으로 매년 같은 것이라 루틴 하게 돌아가게 되는 편이 있어서

해가 거듭될수록 모험이라던지 새로운 것을 도입하거나 겪어볼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인하우스대행사, 그 차이


인하우스에서 일할 때와 대행사에서 일할 때, 업무적인 면에서 느꼈던 차이라면,

대행사에서 일할 때에는 포장지를 어떻게 하면 예쁘게, 풀기 쉽게, 잘 완벽하게 싸면 될까를 고민했다면

인하우스에서 일할 때에는 안에 어떤 것을 넣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까 더 먼저 고민했던 것 같다.

인하우스로 처음 옮겼을 때 이런 부분에서 마인드세팅이 잘 전환이 안돼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콘텐츠 자체에 대해서 연구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또 하나는 나는 대행사 출신이었지만 이제는 인하우스 직원으로서 대행사를 고용해야 하는 광고주의 입장이 되었는데, 아직도 대행사의 마인드가 남아있었다. 초반엔 대행사에게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주문해야 할지, 나는 이런 실무는 내가 하고 싶은데 대행사에 맡기는 편이 좋을까, 혹은 내가 이 부분에서 견적을 조정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하는 그런 사소한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고민들이 종종 있었다. 사실 양쪽 입장을 다 잘 아니 더 잘 조율할 수 있는 위치였는데 처음엔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대행사에 있으면 광고주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대행을 맡긴다는 것은 , 내부 케파가 부족해서 의뢰를 하는 경우이거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선 경우일 것이기에 당연히 완전 실무의 영역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것을 요청한다거나, 본인 스스로 갑질인지도 모르는 갑질을 시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겨나는데 그런 것들이 대행사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인 경우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


인하우스 직원으로서의 나와 대행사 직원으로서의 나는 '일'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분명히 있다. 나는 대행사에서 왔으니 그런 부분에서는 일을 추진하는 게 더 쉬웠지만 같이 일하는 대행사나 거래처들이 나를 편하면서도 편하지 않게 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일해야 할까


다양한 곳에서 커리어를 이어가다보니,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디서 일하는 것이 좋아?


지금에 와서 보면, 나 같은 류의 '자기 의견을 내고 싶은 사람,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은 인하우스가 좀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행사에 있을 때에는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야 했다면, 지금은 내가 기획한 대로, 내 의도와 방향대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는데서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


좀 더 진취적인 일을 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대행사가 더 맞을 것 같다. 인하우스는 그 자체적인 콘텐츠에 대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뿐, 다양한 경험과는 거리가 멀고 더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루틴화되는 경향이 커서 넓은 시야를 가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둘 다 겪어본 바로는 어디든 사실 일하는 것은 비슷하다.

내 업무적인 성향과 그리고 원하는 근로조건에 맞게 선택을 하면 그뿐이다.



어디가 '더' 좋은 건 없다, 내가 만족하는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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