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ecialA Mar 26. 2024

03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겠지

몇 년 만에 옛 직장동료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그간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그와 내가 함께했던 직장에서 나는 행복하지 못했었다. 몇 달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근무하는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채 하루가 안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른 팀에 근무했고, 서로를 애처롭게 여기기만 할 뿐 서로를 위해서 잠깐의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빴고 눈치가 보였다. 몇 달 후, 그곳에서의 내 마지막이 해피엔딩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기억이 나에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기에 이후 몇 년간, 그곳에서 근무했던 몇 달은 나에게는 없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에 받았던 내 상처는 이후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내려고 나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그때의 내 초라한 모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때의 내 모습과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 지난 몇 년간 내가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보낸 시간을 털어놓기에 바빴고, 얘기를 들은 그는 나를 토닥여줬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 그때는 여전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아마 사람마다 제각각. 그런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괴로운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도 창피한 흑역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시간들을 내 기억에서 삭제하는 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통에서는 해방될 것이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기억을 발판 삼아 성장하고 극복하는 것뿐이다.

나태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데 엔 나쁘지 않은 방법 중 하나다.

좋은 방법은 결코 아니지만, 극약처방이 필요할 만큼 스스로가 나태 해질 땐 한 번씩 써먹을만하다.






어느 날 좋은 날, 짬을 내어 만난 동료 덕에 나도 오랜만에 그 기억을 끄집어내 봤다.

그에게 좋아진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좋았고, 행복했다.

그때의 기억에서 이제 어느 정도는 치유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생했어 나 자신.

그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힘든 기억을 가진 누군가에게도 힘내라고 전해주고 싶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02 아무것도 먹지 않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