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임신이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다가온 혼란스러운 감정은 생각보다 매우 강렬했다.
일단 이 사실을 누구에게, 어떻게, 언제 알려야 할지부터 혼란스러웠다.
신랑에게 먼저 알려야 할까..? 지방에 근무 중인 그는 꿈에도 이 사실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올초부터 주말부부생활을 다시 시작한 터라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 조차가 많지 않았기에 피임에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사실 결혼생활도 어느덧 6년 차에, 나이도 적지 않으니 임신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그렇게 하게 된 것도 있었다.
그가 오기까지 3일.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야 할까. 지금 당장 전화해서 알려주는 게 나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친정식구들에게 당장 알려야 할까. 임신 초기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안정기에 접어들고 주변에 알리는 게 좋다는인터넷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일단 안정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을까...?
당장 2주 뒤에 예정되어 있는 해외출장에 가기 어렵겠다고 회사에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회사 업무특성상 오지를 주로 가게 되는데, 경우에 따라 한두 시간씩 비포장도로를 달려가야 하는 일들도 있어 아무래도 임신초기의 임산부에게는 무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난생처음 하는 임신이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도 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단 남편과 가족들에게 어떻게 알릴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회사에 1번으로 알리기로 했다.
어쨌든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상황에 당장 나 대신 누군가 출장을 가야 했기에 여러모로 양해를 구해야 했다.
회사에선 어떤 반응일지 말을 꺼내기 전까지 내내 노심초사였다.
요즘 아무리 출산율이 저하되고, 아기를 낳으면 애국한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회사차원에서, 특히나 우리 회사처럼 소규모직원으로 운영되는 곳에서 직원의 공백기라는 건 운영하는 입장에선 달갑지 않을 것이었다.
먼저 팀장님에게 임신을 했고, 출장을 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평소에 임신, 출산에 대해 회사에 언젠가? 는 그럴 생각이라고 답을 해왔었기에 생각보다 팀장님은 놀라지 않으셨고 축하해 주셨다. 다른 분들도 생각보다는 덤덤하게 축하를 해주셨고 곧 내 대신 출장을 갈 사람이 정해졌다.
내 대신 출장을 가게 된 내 동기에게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나도 같은 상황이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하게 된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하게 고마웠다. 출장준비는 내가 다 할 테니 조심히 다녀만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그에게 다과쿠폰을 선물하면서도 하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거 안 해주셔도 된다고, 당연한 거라고 하는 그가 천사처럼 보였고, 뭐라도 하나 더 안겨주고 싶을 만큼 고마움이 하늘을 찔렀다.
회사에서는 정말도 발 빠르게 내가 출산할 경우, 공백기에 내 업무를 담당할 직원까지 대략적으로 정해줬다.
육아휴직 대체자를 뽑기야 하겠지만, 내가 하는 일은 임시로 1년 대체자에게 맡기기에는 연단 위로 끊어지지 않는 호흡이 긴 사업이라 아마도 내 동기가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에게 인수인계를 할 준비를 같이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직장선배로부터 임신을 하는 순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고, 그냥 갑자기 출근을 한동안 못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갑자기 입원하거나, 그래서 갑자기 퇴사하거나..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아직 출산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 빠른 회사의 대처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맡고 있던 사업은 회사에서 2-3년 전부터 시작해 슬슬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사업으로, 앞으로 키워보려고 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그전엔 초기단계라 시행착오를 겪던 중이었고, 성과가 잘 나지 않고 일이 복잡하니 직원들이 기피하던 사업이었는데 작년에 내가 입사하면서 나름 초기세팅을 잘해나가던 중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 사업 초기단계를 잘 세팅해놓고 나서 육아휴직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반년정도, 내 생각보다는 그 타이밍이 빨리 온 것이라 아쉬움이 컸다. 고대하던 출장도 가지 못하게 되니 마음이 꽤나 불편했다.
후임자를 빨리 정해준 것도, 정해진 후임자가 꽤나 일을 잘하는 촉망받는 직원인 것도 내심 속상했다.
어려운 고비를 내가 많이 넘어왔기 때문에, 내 후임자가 가게 될 길은 조금은 편안할 것임은 자명했다.
게다가 더 유능한 직원이라 더 훌륭히 잘 해내 내가 돌아올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들으니 그런 걱정은 지금뿐이라고 했지만, 아직 초기라서 그런지 현실감이 없어서 그런지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쩔 수는 없었다. 새삼 직장 다니면서 임신, 출산, 육아를 모두 해내는 전국의 워킹맘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것들이 어쩌면 낮은 출산율에 한 부분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직장인 여성들은 바로 이런 상황과 감정에 직면해야한다. 몸의 변화도 신경쓰이는데, 안팎으로 복잡하고 신경쓰이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을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이 '임신'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