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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Aug 25. 2024

05. 임밍아웃, 그는 좋아하고 있을까

부모가 되는 걸 점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회사에 임신소식을 알리고 난 다음,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바로 신랑과 가족에게 '임밍아웃'을 하는 순간이다.

신랑이 집에 오기 전날까지 인터넷에 '임밍아웃 이벤트'를 수시로 검색했다.

현관에 풍선을 달아 예쁘게 꾸미는 것부터, 두줄이 나온 테스트기를 넣을 수 있는 예쁜 임밍아웃 박스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어떻게 알려주는 편이 좋을까. 입이 근질근질해서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을 주고받으면서도 '아 지금 말해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웠다.


이벤트를 할까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극 T성향의 신랑의 반응도 걱정됐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생각보다 안 기뻐한다거나, 안 놀란다거나.. 시무룩한다거나? 하는 류의 반응이 80% 이상 예상되는 바였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도통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그가 오기 전날까지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가 집에 오는 날, 아침에 다른 일로 전화통화를 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해버렸다.

'흠흠. 알겠어. 그럼 내일 보자!'

'그리고 오빠, 오늘 집에 올 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와!'




'뭐야, 설마.... 진짜야?........ 진짜???;;'


진짜만 연발하는 그의 반응을 보며, 생각보다는 놀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뭔가 이벤트를 준비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벤트는 물 건너갔네, 생각이 들었다.


짐짓 놀란 것 같았던 그는 금세 알았다며, 저녁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업무로 복귀했다.

뭔가를 더 묻지도 않았다. 그도 혼란스러워서 그런 걸까?

지난 며칠 동안 혼란으로 잠도 못 자고 웃었다가 울었다가 혼자 정신 나간 여자처럼 지냈던 나를 돌이켜보면서 그도 지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못내 궁금했다.


그는 지금 좋아하고 있을까?





친정식구들에게 알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알려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제일 먼저 여동생에게 알렸다.

엄마와 언니는 알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챙겨주기야 하겠지만 아직 그 챙김을 받기에 내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제일 안 달려올 사람은 역시나 극 T 성향인 여동생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본인이 친정식구 중 첫 번째로 알게 됐다는 사실에 생각보다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역시나 달려오지는 않아서 내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다듬기에는 도움이 됐다.




대망의 신랑이 집에 온 날. 각자의 일터에서 퇴근하고 조우한 우리는 꽤 차분했다.

집에 들어온 신랑은 조용히 나를 꼭 안아주었다.


조심스럽게 신랑에게 두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


임신하면 두줄이 나오는 테스트기를 처음 봤다는 신랑은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정도로 성교육을 받은 지가 오래된 듯했다. 하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도 수상쩍을 뻔했다.


신랑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나름 하루동안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듯 보였다. 생각보다는 담담하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병원을 예약해 뒀으니 다음 주말엔 같이 병원에 초음파를 보러 가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임신을 하게 되면 초기에 대충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좁은 우리 집에서 이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과 준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재정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등 가까운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를 이야기했다.


부모가 된다는 걸, 우리 둘 다 점점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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