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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Jun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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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으로 대우받는 것, 이름으로불리우는것,내가 되는 것

미국에 와서 아직까지도 완벽히 적응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이름에 대한 문화일 것이다. 상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기본적이고 당연한 이 문화는 매일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소개를 반복해야 하는 나에게 꽤나 흥미롭고도 고민스러운 주제였다. 지금 세대의 한국인 이민자들은 영어 이름을 거의 만들지 않고 그대로 한국 이름을 쓰는 추세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굳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 상에서 나만의 적응할 방법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내 경험상으로는 딱히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에야 내 한국이름도 어느 연예인 덕분에 많이 알려져서 더 이상은 잘못 알아듣거나 헷갈리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이건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고 비슷하게 들리는 다른 이름으로 종종 사람들이 잘못 알아듣고는 했다. 하기사 나 스스로도 성과 붙여서 발음할 때 이 세 글자가 묘하게 발음이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주로 이름보다는 별칭이나 어느 대명사로 더 자주 불려졌고 내 이름을 듣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도 왠지 익숙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나에게 직업이나 직책과 관련된 호칭이 생기자 이름은 더더욱이 불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직장에서 내가 직책으로 불리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고 오히려 그것으로 내가 이득을 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한 번은 부모님이 나를 집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에 내가 정색을 하고 거부한 일이 있었다. 내가 가족들 집에서까지도 내 직업이나 직책으로 불리고 그 역할에 갇힌 존재로 여겨지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중에 병원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부르기 시작해야 했을 때 나는 그 예민함이 어떤 의미였는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일했던 병원에서 한국 이름을 쓰고 있었을 때에는 사실 이 중요성을 잘 몰랐을 때였다. 자주 만나는 동료들이야 내 이름을 기억하고 제대로 발음하고 부를 수 있었지만 가끔 만나는 다른 직원들이나 환자들은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나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여기에서 한 명의  chaplain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고 내 배지에 달린 그 직책만 사람들이 알아보면 일하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환자들의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누군가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순간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단순히 내가 직책을 달고 일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알고 싶어 했고, 기억하고 싶어 했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했고,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고 혹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당혹스러워할 때, 실은 그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그렇게 되도록 했던 나의 결정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시안 이민자로서 이름을 다시 선택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복잡하고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지만 내가 어떤 의미로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국은 이것이 참으로 내가 나로서 불리기 위한 방법이고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름을 다시 선택했다. 기억되기 위해서, 불려지기 위해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느 다른 정체성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나로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 뒤로부터는 간혹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듣고 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What's it all about ~Alfie?" 1960년대에 유행했던 영화 주제가. "나도 내 이름을 딴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이면서. 


What is in girl's head,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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