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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fie Jun 24. 2021

Gratitude

고마움을 느끼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

감사라는 말은 참 어려운 것 같았다. 예의상 그냥 습관적으로 목구멍 밖으로 밀어내는 그 말 말고 정말 고마워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 예의라는 관습적 언어에 담긴 무게 때문이었을까 사실은 이 감사라는 말을 싫어했던 것 같다. 고맙습니다 혹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한다는 것은 나에게 또 내가 살던 그 문화 속에서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는 나에게 본인이 정말 너무나도 하기 싫었지만 먹고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했다는 가게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꺼낸다. '난 그래도 무조건 왔다가는 모든 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했어. 그냥 했어. 나도 모르겠어 왜 그 말을 시작했는지. 그런데 꼭 했어. 하루는 어떤 퉁명스러운 손님이 그러더라. 이게 뭐 그렇게 고마울 일이냐고. 대답을 못했어. 정말 나도 뭐가 고마울 일인지는 모르겠었거든.' 


겉으로 하는 인사치레를 정말 경멸하는 내 성격은 사실 엄마한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인지라 그때 엄마가 무슨 마음으로 로봇처럼 그 인사를 했었는지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정말 너무 있고 싶지 않았던 장소, 하고 싶지 않았던 일, 고되고 성취감도 적고 하루하루 지쳐가는 그 시간을 견뎌내는 그 애틋한 삼십 대 청년을 향한. 그 말은 엄마를 그 자리에 계속 버티고 있을 수 있게 했던 하나의 다짐, 약속, 결의, 그리고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스스로도 분명히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고단한 청춘을 위한 한 움큼의 존경, 한 움큼의 격려, 한 움큼의 고마움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알람을 듣고 깨는 것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겨우겨우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너무나 혐오스러우리만치 버거울 때가 있다. 내가 이 거대한 산업화 기계 속의 부속품 하나가 되어서 억지로 맞물린 톱니바퀴에 떠밀려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문득 그럴 때에 나는 이 빌어먹을 감사를 대체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나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돈을 쥐어준 사람에게 대답하는 암호문인 걸까, 내가 돈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준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인 걸까, 닫히는 문을 잡아주고 물컵을 건네준 사람에게 꺼내 보이는 나의 매너인 걸까. 

감사라는 이 말은 사실 너무나 성역과도 같아서 그 포장지가 너무도 고급스럽고 튼튼해서 나에게 이런 생각들은 마치 뒤틀린 내 심사를 고약하게 반사해내는 그 플라스틱 포장지의 심술 같았다. 


며칠 전 나의 대소사에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던 한 친구가 덧붙였다. 이제 마음고생 그만하고 행복하게 살라면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살면 되지 않냐고. 일상적으로 들을법한 평범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그날 이 친구의 말에는 마음이 크게 한 번 움찔, 하고 흔들렸다. 그동안 내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너무 잘 아는 친구여서, 그가 하는 위로가 크게 와닿아서였을까. 그가 꺼낸 감사라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그동안 내가 너무나 질색했던 그 미끌미끌하고 성스러운 포장지를 걷어낸 투박하고 거칠거칠한 종이 같은 질감을 처음으로 만진 것 같은 그런 기분. 그가 보낸 텍스트 메시지에 하트를 붙여주고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고맙다고. 그 말을 해준 친구에게도. 그리고 이제 그 말에 정말 마음으로 화답하게 된 나에게도. 오늘 이때 여기까지 그 매섭도록 지겹고 지치는 그 하루하루를 버텨낸 애틋한 그 감사 로봇에게. 나도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존경 한 움큼과 고마움 한 움큼을 선물했다. 


Whirl of thinking,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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