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fie Jun 08. 2023

Forgiveness

배신당한 무력한 나를 용서하기

내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웹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 일 것이다. 비슷한 영역을 공부하고 일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어서일까 너무나도 깊게 공감되는 내용이 항상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도 얼마전에 가장 크게 위안을 얻었던 내용은 “배신당한 나를 용서하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라는 것은 남에게 내가 베풀어야 할 아량과 호의라고만 믿어서 였을까.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더군다나 상처받은 나를 용서한다라.. 나에게 상처 준 악당을 어떻게 용서해야하는지만 부족한 마음의 여유를 탈탈털어 쥐어짜내봤지 그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한 무력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몰랐었다.

그런데 그 웹툰 덕택에 돌아보게되니 비로소 보였다. 어리고 외롭고 무지했던 지난 날의 나 자신을 악마화하고 받아주지 못하고 있던 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오늘의 나 였다는 것을.


어리고 약한 나를 배신한 것은 성장하고 강해진 나였다. 그 상황에서 그 나이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난 그 때 그 나의 약함을 받아주지 못했다. 항상 나 자신에게 너그럽다고 믿었었는데 실상은 가장 연약했던 나에게 가장 냉혹했던 사람이 나였다. 나의 연약함을 용서한다는 것을 생각해내기까지. 그리고 그 연약함에 냉혹했던 나 자신을 또 용서하기까지. 정말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아마 정말로 충분히 다 용서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상처받은 나 자신에게 그냥 강해져야 한다고, 잊어야한다고, 회복해야한다고,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고 계속 소금물을 끼얹는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재투성이의 아이를 박박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꼬질꼬질한 그대로 사탕을 꼭 쥐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지 못한 것일 뿐이다. 정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그렇게 락스를 뿌려서 깨끗이 소독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한 그대로를 꼭 쓰다듬어주는 것임을 이제야 생각해낼 수 있었다.


트라우마와 같이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런 용서가 필요한 것 같다. 그 안에서 상처받아 만신창이가 된 나의 볼품없음을 용서한다. 가장 약해빠진 나의 편에 서서 그만큼 버텨낸 것으로 충분히 대단하다고 지지해 주는 것. 잊혀진 가치를 되찾기 위해, 이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이고 나 스스로의 그 생존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가는, 그 과정이 용서다.


Torch, 2022
작가의 이전글 Survivo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