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라 유이치의 ‘폭풍우 치는 밤에’가 생각하는 그런 날이었다.
비가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창문 밖은 어두운 밤과 같이 깜깜했다. 학생들은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비명을 지르다가 갑자기 나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수업을 계속 이어 나가자 수업을 듣던 학생 중에 한 명이 ‘교수님, OO가 귀신이 보인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귀신이 보인다고? 정말?
정확히 본인이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아주 어렸을 때 동네 뒷산 무덤가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그때 이후부터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귀신은 흐릿한 사람의 형체로 낮과 밤에 모두 보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강의실 모서리 구석에도 귀신이 있다고 매우 구체적이면서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항상 말해주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내 구두와 다리에는 온통 동물들이 할퀸 자국이 있으며, 내 주위에 죽은 쥐들의 영혼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다고도 했다.
그때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동물들이 죽어서까지 나를 원망할 거라고는 그때까지는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실험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동물실험을 해야 한다는 생각, 동물실험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위한 일이라는 등의 생각들은 결국
이 일을 하는 내가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포장하기 위한 생각일 뿐이었구나. 현실은 동물들은 죽어서도 나를 용서하지 못하여서 나의 몸과 발을 할퀴고, 내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순간부터 나는 동물실험으로 희생된 실험동물들을 위해서 부디, 저승에서는 평온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실험동물 분야에서 떠나야겠다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아가며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귀신이 보인다고 했던 학생이 나를 찾아와 정중히 사과했다. 아니, 싹싹 빌었다. 귀신이 보인다는 말은 그날 수업을 하지 않기 위해서 한 거짓말이었으며, 바로 솔직히 말씀드리고 사과드리고 싶었지만, 교수님의 심각한 표정으로 인해, 미처 말하지 못했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비록 오늘은 비가 아니라 눈이 내리고 있지만,
오늘처럼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밖이 잔뜩 어두운 날이 되면, 이미 10년도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학생이 매번 생각난다. (OO야~ 잘 지내고 있지? ^^)
이 학교에 전임교수로 온 첫해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기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실험동물 위령제’를 진행한 것이었다.
우리 학생들이 매년 사람들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희생된 실험동물들에게 삼가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