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의 기록
어김없이 노래기로 시작하는 와장창 거창일기다. 장마가 사그라드는 것인지 노래기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파리는 여전해서 꼭 손 닿는 곳에 파리채를 두어야 한다. 파도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아름다운 것처럼 파리 소리도 아름답게 들을 순 없을까. 일단 오늘 노력해본 결과로는 실패다. 혹시 파리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방법을 꼭 전수받을 것이다.
오늘은 5시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밭에 갈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랄 건 없었고, 눈을 잠시 떠서 일어났다고 중규형한테 문자를 보낸 뒤에 다시 한 시간 정도 잠에 들었다. 새벽의 사과밭은 고요하고 상쾌했다. 풀을 벨 때마다 소매에 스며드는 빗방울이 시원했다. 도란도란 대화하며 천천히 잡초를 벴다. 처음 낫을 들었을 땐 빨간 뿌리를 찾기가 힘들어서 여기저기 잘라보고 어딘가엔 뿌리가 있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일이 좀 더 손에 익어 잘라야 하는 부분만 착착 자를 수 있었다. 우리가 베는 잡초는 전봇대나 길고 높게 자라는 다른 잡초에 기대어 넝쿨처럼 자라는데, 바닥에도 뿌리가 있지만 넝쿨의 중간 즈음에도 빨간 뿌리가 있다. 중간과 아래를 한 번씩 끊어주면 금세 시든다.
사실 오늘은 별로 쓸 이야기가 없다. 일 다녀와서 한 게 먹는 것과 자는 것밖에 없어서일까. 일을 마치고 나니 8시 40분 정도 되어서 씻고 난 뒤에 바닥에 누워 나란히 벗과 낮잠을 잤다. 눈을 떴더니 11시가 다 되어 빨래를 넣고 다시 누워 잤다. 12시엔 일어나서 프링글스 한 통을 클리어 하고 점심을 먹었다. 문어숙회와 마파두부에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뚝딱 하고 나니 2시가 되었다. 몰려오는 식곤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바닥에 누웠다. 휴대폰으로 소설책을 다운받아 단편소설 한 편을 읽고, 꾸벅꾸벅 졸다가 종이책이 읽고 싶어 종이책을 펴고 다시 졸았다. 적고 보니 민망할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벗과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잘 챙기는 거라곤 먹는 것과 자는 것밖에 없다고 했는데 정말 맞다.
먹고 졸고를 반복하는 오후가 너무 낯설어서 5시 즈음에는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널어둔 빨래에 스며든 볕을 몇 번 만져보았다가 가만히 앉아 화창한 하늘과 나무도 보았다가, 새소리도 들었다. 견디기 좋은 더위가 마음에 들었다.
저녁에는 냉장고를 정리하고 서랍도 정리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양념과 식기를 종류별로 한 곳에 모으고 칸마다 이름표도 붙여주었다. 말끔해진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계속해서 새로 사게 되는 물건이 없었으면 했다. 순후추는 세 통이나 되었는데 이젠 더 불어나지 않기를.
난 생각이 무척 많은 사람인데 이곳에서의 하루가 늘어갈수록 생각마저 정리되는 듯하다. 처음엔 느낀 점도 많았고, 쓰고 싶은 것도 그래서 많았지만 단순한 하루의 끝자락에는 간략한 장면만 남는다. 오늘은 충분히 배부르기만 한 하루였다. 무언가를 많이 느끼고 배우지 못하더라도 어떤 하루든 충분히 의미있다는 걸 느낀다. 무겁고 거창한 배움이라기보단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그냥 그런 거지 뭐~할 수 있는 가벼움을 가지게 된 것도 같다.
열심히 심심할 수 있는 순간이 때때로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바라왔던 '여백'의 현현이 바로 이런 삶이 아닐까. 심심하기, 내일의 일을 재단하고 걱정하지 않고 그냥 지금을 살기. 아! 복잡하게 생각하려니 어지럽고 피곤하다. 그냥 심심함이 좋다 이말이야. 휴지심을 베개 삼아 빈둥대는 시간과도 조금 친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말이야.
내일이 벌써 마지막 밤이라는 게 아쉽다. 믿기지 않는 건 아니다. 주말이 되기 전부터 계속해서 남은 밤을 세었기 때문일지도. 그래도 떠난다는 건 아쉬운 것이다. 여러 번 뒤를 돌아보겠지만 슬프거나 먹먹하지 않은 까닭은 다시 돌아올 걸 알기 때문. 말로만이 아니라 다다음주에 여기 다시 온다. 어떤 것이 달라지고 어떤 것이 여전할까. 머무는 곳과 마주보고 있는 산의 울창함과 푸르름은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