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쌓아가기
작년(23년 8월경)에 피망을 손질하다 무수히 많은 씨앗을 털어내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이 들면서 호기심도 과유불급ㅜㅜ 그럴 때는 무거운 엉덩이도 가벼워진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무거운 베이스기타를 메는 것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니 몸이 성할 날이 없다.
그럼에도 요렇게 만만한 호기심은 애교 수준.
피망 4개 안에 있던 씨앗을 배양토를 채운 화분 두 개에 몽땅 털어 넣고, 아침저녁 분무를 해주며 공을 들였더니, 옴마나~~~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땅에 심어 기를 여건이 안되니 아쉽지만, 한 포기를 남기고 분양을 했다. 그렇게 혼자 남아 겨울을 나고, 얼어 죽을까 싶어 씌워 놓았던 비닐 안에서 잘 버텨주었다.
올해 따뜻한 공기와 함께 키도 크고, 별모양을 닮은 예쁜 하얀 꽃도 피웠다.
벌대신 에에엥~~ 입으로 날갯짓(피망 녀석이 듣고 있을지 모르니ㅋㅋㅋ 본인은 화초들과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을 하고, 붓으로 수정도 시켜주며 갖은 정성을 다 들였다.
배은망덕하게 첫 꽃을 떨궈버리더니(ㅋ아까워 떨어진 꽃을 먹어봤더니 피망맛은 나더군) 그 뒤로 꽃은 땡!
그럼에도 줄기며 잎이 어찌나 튼실한지~ (잎을 따서 나물이라도 해 먹어야 할까) 이 녀석 필시 지가 피망인 것을 잊은 거 같다.
내가 나이를 잊고 널뛰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몸이 안 따라줘서 그렇지 맘은 18세~ 너무했나ㅎ)
어쨌든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피망 키우는 유튜브만 뒤적거린다.
나들이 갔다가 나팔꽃씨앗을 가져다 말려 놓은 게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나 싹이 틀까 싶긴 했으나,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피망옆에 심어놓았다.
나는 암만해도 출산드라~
어찌 그렇게 잘 크는지.
돌돌돌 똬리를 틀도록 지지대를 만들어 줬다. 얼마나 크겠어했는데, 천장에 닿아 어디로 가야 할지^^
크지 않은 화분이라 연약한 것도 있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피망이란 녀석이 양분을 다흡수하고 있으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어지간히 조그맣게 크면 귀엽게 공생시키고 좋을 텐데)
작은 공간에서 한계점을 넘어선 피망을 포기하기로ㅜㅜ
뿌리째 뽑아낸 피망은 차마 버릴 수 없어 꽃병에 꽂아 수경재배?
나팔꽃~
너는 꽃이야 잊지 마. 뽀너스로 영양제도 줬으니 잘 커야 한다.
언제까지 버텨줄지 모르겠지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피망은 아직 쌩쌩하다.
네가 정녕 피망임을 잊었느냐~
나도 속상하구나. 땅에 심어 길러주지 못해서.
사람 사는 것도 별반 다르겠는가.
잘될 것 같은데 맘대로 흘러가지 않기도 하고, 난관에 봉착해 앞이 보이지 않아 우울하다가도 뜻하지 않은 행운이 오기도 한다.
우연히 심어놓은 씨앗이 발아해 싹을 틔우니, 소소한 기쁨이 행운처럼 찾아와 작은 행복을 선사한다.
행복이 쌓이면 좋은 일들도 생기겠지.
행복은 보려 하면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