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카페 쿠폰 만료일이 내일이다. 오픈시간을 계산하고 집을 나와 산책처럼 카페로 향한다. 여기저기 매섭게 비를 뿌리고 장마의 흔적을 남기더니, 잠시 소강상태다.
오늘은 제법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모이면 하는 얘기가 지긋지긋하니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 한다. 비 오기 전부터 관절들이 비의 신호를 감지하고 묵직해진다. 그럼에도 비가 좋다.
실내에 불이 켜지고 입장과 함께 첫 주문으로 나온 로얄밀크티쉐이크.
평소에는 아메리카노 또는 카페라떼가 최애음료임에도 선물로 들어온 메뉴는 맛을 본다. 홍차를 좋아하니 나쁘지 않았다.
관자놀이가 띵하게 음료를 먹어치우고는 책을 펼쳤다.
좋아하는 작가라 다수의 작품들을 접해서인지, 글의 행간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필체가 느껴진다.
뒤이어 들어왔던 손님들이 뒷좌석에 앉았다.
늙은 노모를 모시고 중년부부가 따스한 옛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요?”
흰머리가 희끗해지고 나이가 먹어도, 엄마는 단어만으로도 따스해진다.
“그러게 내가 3년? 4년? 얼마나 살아서 이런 날을 볼지 모르겠구나….”
편찮으신지 말투가 어눌하시지만, 슬픔이 느껴진다거나, 한탄이 섞이지 않고, 덤덤한 목소리.
수많은 7월을 보내셨겠지.
마냥 편안한 시간이었겠는가. 감정이 오롯이 느껴졌다.
활자가 뿌연 해지고 눈을 떼 고개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초록빛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햇살이 흐르는 냇물에 부딪쳐 반짝이고 있었다.
내게 남은 7월은 얼마나 될까?
노모의 처연한 말투 때문이었을까. 나의 감정전개도 묘하게 편안하다.
주어진 날이 얼마나 되는지 안다면 하루가 하루가 더없이 소중해지겠지.
어떻게 지내게 될까?
가진 것도 적어, 잃을 것도 없으니 불안하지 않다.
두 아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학업을 마치고, 취직해 분가까지 시키고, 책임을 다했으니 나도 아이들도 대견하다.
대수술도 잘 견뎌내고 통증도 잘 이겨내고 있으니 쓰담쓰담.
혼자서도 씩씩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잘살아내고 있으니 이 또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준다.
폭풍 속 끊이지 않게 불어대는 비바람에 피할 수도 없는 들판에 내몰려졌던 그때.
눈을 뜨고, 잠들기 전 주문처럼 되뇌고, 부적처럼 써놓았던
here and now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살아냈다.
아픔과 고통이 있어봐야 오늘만 이겠지.
나를 아껴주자.
이쁘다 말해주고, 사랑한다 오른손을 들어 왼쪽 어깨를 토닥여 준다.
신기하게 감정을 비틀어 쥐어짜며 우는 시간도 사라졌다.
나이 들어 굵어지는 주름이 생겨 예전처럼 예쁘지 않아도 거울을 보며 웃을 수 있다.
웃는 네가 제일 예뻐~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에 와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달라진 맘은 나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평안했던 적이 드물다.
https://youtu.be/40vynd0KsHg?si=OVcpcrcmiYLEqXhc
카페 안에는 잔나비가 촉촉한 목소리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달랠 길 없는 외로운 마음 있지 머물다 가셔요(…)
그분들의 대화가 무거운 주제임에도 맘은 더없이 편안하다.
오늘
이 7월이
참으로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