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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준 Nov 15. 2022

도리어 진리는 우리를 구속하곤 한다.

참고로 사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에서의 진리는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고도 한다. 내 생각에도,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 의지의 실천에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정량화되기 쉽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일은 "앎"이 자유 의지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데 정해진 솔루션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란 많다. 게임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최근에 플레잉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공략 글이 있는 블로그를 보곤 했는데, 여기서는 게임을 쉽게 플레이하기 위한 여러 트릭들이 소개되었었다. 게임상 존재하는 수수께끼의 미로에 대한 정답도 친절하게 알려주며, 돈과 아이템을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최적의 루트도 공개한다. 사실 이걸 토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가장 빠르고 쉽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게임이 재미가 없어진다. 내 의지와 선택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공략에 따라 정해진 플레잉을 그저 따를 뿐이라면 단순한 손가락 운동과 다른 것이 뭘까 싶다. 


특히 전략 게임들은 다들 어느 정도 솔루션이 있는 것 같다. 듀얼링크스도 내가 4년 했었는데, 덱이 익숙해진 이후에는 내 의지로 생각하면서 플레이한다기보다는, 그저 반사적으로 이런 패턴에서는 이런 식으로 카드를 발동하고.. 이런 식으로 플레잉하곤 했다. 최적화된 플레잉에 따라 단지 손가락이 움직일 뿐이었다. 내 마우스 움직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싶었다. 아마 AI를 돌리면 솔루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는 내 의지와 주관이 개입되는 덱을 구성할수록, 알려져 있는 최적의 솔루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더라. 내 안목이 부족했던 것일 수 있겠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알려져 있는 최적의 덱을 따라야 하며, 내 주관이 적용될수록 불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앎이란 구속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유 의지가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인 풍족을 추구한다면 자유 의지를 버리고 최적화된 솔루션에 대한 앎과 그 실천을 추구하면 되겠지만, 그것이 인간적으로 가치 있는 삶일지는 모르겠다. 때론 틀린 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기반하여 행동했다면, 그것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어오고 있다.


그래서 보통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다들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한번 공략 없이 도전해 보라고. 이 뻔한 말이 이제는 심오하게 들린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솔루션에 중독된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한 번은 노력해 보라는 말이 아닐까. 게임이란 승리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플레잉 자체의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요즘에는 철학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있다. 어릴 때에는, 진정한 프로페셔널들은 본인 만의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들이라고 믿었었다. 그렇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길이란 도리어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공을 저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지표나 실적을 높이려면 내가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굽혀야 할 때가 많다. 내 주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 리뷰어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맞춰서 내 주관을 굽히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대중적인 성공에 유리한 것이 아닐까 싶을 때에는 인생이 우울해지곤 한다. 자유 의지가 밥 먹여주는 인생이란 정말 없는 걸까?


이런 담론은 상업성과 작품성이 대비된다는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한다. "잘 팔리는 작품"에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 있고, 거기에 맞춰야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에 자유 의지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은 그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과 같이, 정답을 알더라도 그것대로 행하지 않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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