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문 Feb 08. 2023

23년 2월 7일

29개월 0일

우주의 망가진 생활 패턴을 돌리려고 오랜만에 키카에 갔다. 백화점에 갈 때마다 우주가 입구의 화살표에 홀린 듯 다가서던 곳이다. 좀 큰 아이들을 위한 곳인가 싶어서 엄두도 못 냈는데, 찾아보니 오히려 그래서 36개월 미만은 보호자 무료입장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우주는 들어가자마자 자석 장난감이 있다는 걸 알고 무척 기뻐했다. 넓디넓은 키카에 재밌는 기구를 두고 자석 앞에 앉아서 한참이나 놀았다. 우구 거랑 비슷하긴 한데 다른 모양이 있다며 더 좋아했다. 간신히 미끄럼틀로 시선을 옮기는 데 성공했고, 그 뒤로 여러 기구를 오가며 신나게 놀았다. 두 시간이 금방 흘렀다. 레일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있었는데, 운영시간이 되어 우주에게 타보자고 말했다가 무참히 씹혔건만 우주는 이제 나가자고 하니 그걸 타고 싶다며 울었다. 기구 운영시간도 끝났고 우리도 이제 나가야 해서 못 탄다고 하니 더 서럽게 한참 울었다. 많이 아쉬웠다보다. 두 시간이 아쉬운 나이가 됐다. 집중력이 15분도 안 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많이 컸다.


쌀국수 한 그릇을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우주는 배를 채우자마자 내 무릎에 누워 기절했다. 나이스. 큰 기대 하진 않았지만 내심 우주가 점심 먹고 잠들었으면 했다. 너무 좋아하는 카페에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다. 유모차에 야무지게 우주를 옮기고 편집샵 구경도 슬쩍하고 앞집과 옆집에 드릴 간식도 사고 카페로 올라갔다.


행복했다. 큰 그림을 그리며 챙겨 온 책을 펼쳤다. 우주는 그렇게 2시간 동안 나에게 자유를 줬다. 해가 통창을 향해 예쁘게 기울 때까지 사유의 자유를 누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는 몸이 무겁고 졸리고 차라리 집에 가고 싶을 만큼 피곤했는데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마음이 안정되길 기다리니 점점 편안해졌다. 대상을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일었다.


두 시간의 자유를 얻고 오늘은 우주가 늦게 자도 다 용서가 될 것만 같았는데 그새 습관이 된 건지 우주는 오늘도 열두 시를 결국 넘겼다. 저녁으로 준 카레를 맛있게 먹어준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한참 뒤척이다 거실로 탈주했다가 또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갈피를 못 잡길래 유자차를 만들어줬다. 따뜻하고 달달한 차를 한 컵 가득 먹고는 그제야 잠들었다. 귀여운 녀석.


그냥 자고 내일 할까 고민도 했지만 내일은 바쁜 날이다. 그래서 우주가 깊이 잠든 후에 얼른 몸을 일으켰다. 설거지를 쳐내고 당근에 올릴 물건 사진을 차례차례 찍었다.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물을 올려 컵라면을 제조했다. 맛있었다 육개장. 무료 나눔은 역시 올리자마자 채팅이 많이 왔다. 아끼던 트롤리는 가격을 정해서 올렸더니 연락이 없다. 아침까지 기다려봐야지.


내일은 엄마가 온다. 줄눈 시공 때문에 새집에도 다녀와야 하고 당근 픽업도 줄줄이 있다. 지구오락실

보다 잠들어야지. 정말 며칠 안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3년 2월 6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