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개월 11일
이사로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냈다. 정리되지 않은 방에서 잠을 자고 먹고살았다. 이게 다 가구를 많이 바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던 물건들이 죄다 밖으로 나와있으니. 우리는 포장이사 덕을 반만 본 셈이다. 그래도 우주와 내가 잠든 지난밤, 서방구가 이 악물고 서재를 정리한 덕에 생각보다 빨리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게 되었다. 그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새벽에 깬 김에 일어나서 내 책을 제자리에 꽂았다. 그런데 왜 내가 정리한 건 티가 잘 안 나는 걸까?
우리는 이 집이 너무 맘에 든다. 집이 우리 것(아니 은행의 것...)이라 각 잡고 몇 달을 고민한 덕분에 모든 가구가 계획대로 제자리를 잡았다. 우리 집의 가운데에 위치한 가장 작은 방이 우주 방, 그 옆 방은 우리 침실, 그리고 보통 안방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방은 서재로 꾸몄다. 미니멀을 지향하는 맥시멀리스트들은 결국 이렇게 서재에 큰 공을 들이고야 말았다. 예전 집은 대로와 고속도로 앞에 있어서 문을 닫고 살아도 소음이 심했다. 새벽까지 차가 다니니 거의 24시간 도로 소음과 함께였다. 지금 우리 집은 고요하다. 이사 첫날 서방구가 펜션에 놀러 온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조용하다. 이제 창문도 마음껏 열 수 있다. 따뜻한 날씨가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우리 집 작은 꼬마는 예전 집을 그리워한다. 매일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여기가 놀러 온 기분이 들까? 집에 있던 짐을 다 가지고 왔는데도 동탄 집에 이것, 저것이 있는지 계속 묻는다. 우리야 거기가 전셋집이고 여러 가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애정을 많이 쏟지 않았으니 덜 하겠지만 우주에게는 일평생이 담긴 집이다. 익숙한 구조와 위치, 풍경, 본인이 습관처럼 다니던 모든 걸음이 그립지 않을까. 오늘 자기 전에는 동탄 집에 우주 방, 컴퓨터 방, 하이야(안방을 지칭하는 우리만의 이름이다) 방이 있는지 물었다. 이제는 없다고, 어제와 그제와 동일하게 대답해 주었다. 이제 다 여기에 있어 우주야.
우주의 그리움을 관찰하고 돌보는 동안 나의 그리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여기가 맘에 쏙 드니까 그리움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오늘 오랜만에 예전 집 바로 앞에 있던 하나로마트에 다녀왔다. 지금 집과 그 동네로 왔다 갔다 하던 길은 원래 잘 다니지 않아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길인데, 오늘 달린 도로는 항상 고속도로에서 나오면 집까지 달리던 길이라 '아, 여기가 우리 동네였지.'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당연히 지난 집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마트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살던 모습이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상이다. 마음이 이상했다.
이사 하나로 인생을 알게 됐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자꾸만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매번 삶을 돌아보게 한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도 내 삶도 그렇게 떠나보내게 될 텐데. 이사 같은 작은 경험들로 떠나보내는 일에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질 수만 있다면 좋겠다. 우주와 우리 부부의 그리움도 곧 괜찮아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