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수목원캠핑장
작년 10월 말에 떠났던 캠핑을 끝으로 그토록 고대하던 봄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 집 4세도 우리만큼이나 캠핑을 기다렸다. 가면 심심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할 텐데 캠핑을 참 좋아한다. 본인에게 작년 10월이란 꽤 먼 시간의 기억일 듯한데 캠핑 좋다며 가고 싶다는 말을 몇 번 했다.
고대하던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1박 2일의 일정은 텐트를 치고 접다 끝난다는 걸 깨닫게 된 후로 반드시 2박을 잡는다. 한 밤만 자고 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남편의 직장이 우리 집에서 캠핑장 가는 길 사이에 있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남편을 픽업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분주한 짐 싸기를 마치고 출발해도 좋다는 신호에 맞춰 집을 나섰다.
어디든 떠나려면 아이의 낮잠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다행히 출발할 때까지 버티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들었고, 캠핑장 근처 마트에 들를 때까지 푹 잤다. 마음이 한결 가벼운 시작이다. 도착 후 사이트에 자리 잡고 내려 텐트를 치기 시작하자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빠 옆에서 폴대를 만지며 흉내내기도 하고 다 치지 않은 텐트를 걷어내고 들어갔다가 나왔다를 반복하며 놀았다.
작년 캠핑에는 아이패드를 챙겨 식사시간이나 정리할 때 유튜브를 틀어 보여줬었다. 지금만큼 자기주장이 강할 때가 아니었고 통제가 비교적 수월했으며
알아서 놀거리를 찾아 노는 능력이 덜 발달했을 때였다. 요즘 부쩍 집에서 심심해지면 TV를 보여달라고 말하는데, 거의 매일 그렇다. 보통 달래서 보여주지 않지만 내가 바빠서 뭘 해야 할 때는 보여준다는 걸 알아서 수를 쓰기도 한다.
이제부터 가을까지 계속 캠핑에 다닐 텐데 이번에 가서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이의
머릿속에 공식처럼 자리 잡힐 게 뻔했다. 보여달라고 요구해도 할 말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여주지 않기로 정했다. 여러 번 찾았고, 우리에게도 위기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성공했다. 한 번 본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보여줄까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안 보고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우리 가족 모두가 배웠다. 참고 버티길 잘했다.
우리 캠핑의 식사 메뉴는 거의 고정이다. 아침은 된장찌개와 누룽지, 저녁은 삼겹살. 아침에 먹는 누룽지에 된장찌개는 속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저녁에 먹는 삼겹살은 그간 아이 때문에 참아왔던 굽는 고기를 향한 갈망을 완전히 해갈해 준다. 점심에는 면 파티를 벌였다. 아이는 생애 첫 짜파게티로 행복한 식사시간을 보냈다.
맵거나 너무 짜면 아이에게 먹일 수가 없어 밀키트 대신 집에서 재료를 챙겨 요리해 먹는다. 롤테이블 앞에 앉아 얇은 도마 위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하는 칼질도 재미가 쏠쏠하다. 첫날 저녁은 텐트 피칭 후에 정신없을 것 같아서 제육을 재워왔다. 우리는 고추장, 아이는 간장으로. 텐트 정리를 마치고 불판에 재운 고기를 올리기만 하면 되어서 정말 편했다.
전에는 수목원이었던 곳이 캠핑장이 된 양평수목원캠핑장은 산책로가 기가 막히게 조성되어 있다. 이리저리 구경하며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네 살은 우리를 계속 높고 높은 산책로로 인도했다. 덕분에 캠핑장과 그 너머 동네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벚꽃이 남아있어 알록달록 봄꽃과 함께 새 계절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산책로 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노를 저어 연못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도록 배 두 척이 놓여있다. 작년에는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왠지 네 살은 배를 좋아할 것 같아서 데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발을 동동 구르며 나간 배가 돌아올 때까지 눈 빠지게 기다렸다.
오래된 노를 힘껏 저어 연못 한 바퀴를 돌았다. 영상 찍으려고 핸드폰을 들어 올리니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배 덕분에 카메라 무빙이 멋지게 나왔다. 세 식구가 같이 배에 타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물 위에 셋이 앉아있으려니 괜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기억 뒤에는 덜덜 떨던 밤이 있다. 내동 덥다가 하필 우리가 떠난 주말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최저 0도를 찍은 새벽공기를, 온풍기도 이겨내지 못했다. 패딩까지 껴입고 잤는데 찬기가 머릿속을 파고 들어오니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틀 밤 모두 몇 시간 못 잤다.
다행히 우리 집 네 살은 우리 사이에 껴서 셋 중에 가장 잘 잤다. 그리고 아픈 사람 없이 무사히 캠핑을 마쳤다. 그래도 3도 아래로 내려갈 것 같으면 2박은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온풍기를 더 큰 걸 사던지. 생각만 해도 어깨가 시리다.
추위에 떠느라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지만 집에 돌아오니 머리가 맑았다.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캠핑 가면 몸이 고생하는 동안 머리가 쉬는 것 같다. 그래서 캠핑이 좋다. 네 살은 왜 좋아할까? 아무튼 세 식구 모두 다 좋아해서 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