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오사카 여행의 기억을 제대로 남기기 위해 글을 썼다가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썼는지 모르겠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 끝난 후 해외로 떠나는 첫 비행기, 네 살에게는 인생의 처음인 해외여행,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도 아이와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라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걱정도 많았고 생각할 것도 많았고 그래서 느낀 것도 좋았던 것도 너무 많아서 다 남기자니 글이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기만 했다.
여행은 아무튼 대성공이었다. 여행의 만족도는 사람마다 매기는 기준이 다를 텐데, 나는 여행지와 정드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꼽는다. 오사카와 찐하게 정들어버렸다. 5월 말, 동생과 네 살과 나, 셋이 떠난 오사카 여행에서 우리는 6월 말에 남편들도 다 같이 가기로 했다가 취소한 괌 여행의 빈자리를 오사카로 다시 채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한 달 사이에 두 번 다녀오게 됐다. 그래도 또 가고 싶은 곳. 두 번 다녀오면 이토록 정이 든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그저 또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가져왔다.
4세를 데리고 가기에 오사카는 비행시간이 적당했다. 딱 일 년 전 세 살이었을 때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서, 그러니까 뜨고 내리는 데 30분이면 충분했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온몸을 가만두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여행을 통틀어 비행기 타는 게 가장 걱정이었다. 그새 많이 자란 네 살은 제법 여행자답게 비행을 즐겼다. 즐겨보던 유튜브 '주니토니'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요가 ‘조종사와 승무원’인데,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게 비행기에 있으니 더 즐거워하는 듯했다.
사실 오사카는 어른만 가면 보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훨씬 많다. 밤의 오사카도 궁금하고, 정처 없이 일본의 거리를 거닐며 로컬 카페를 찾아보고 싶기도 하고, 유니버셜에서 무한정 기다리더라도 어트랙션 두세 개 정도는 타보고 싶고. 무엇보다 가만히 서서 사진을 공들여 찍을 여유가 없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운 것만 생각하면 아쉬운 여행이 된다. 여행의 순간순간 마다 네 살이 행복해하면 우리도 덩달아 행복했고 그러면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며 마음으로 성공을 외치곤 했다.
네 살도 우리도 모두 행복했던 오사카의 여행지를 기록한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키 92cm 이상 되면 탈 수 있는 어트랙션이 몇 가지 있다. 입구에 서서 키 재면 팔찌를 채워 표시해 주는데, 처음 키 잴 때 안 잰다고 울어서 진땀 뺐다. 겨우 줄 섰는데 기다리다 잠들어서 결국 날아라 스누피는 타지 못했다. 흑...
그 부근에 유아휴게실(수유, 기저귀교체)이 있어 편리했다. 스누피 어트랙션 옆에 위치한 스누피 식당(스누피 백롯 카페)에서 키즈메뉴도 판매하고 있고, 버거가 정말 맛있었다. 다른 곳보다 위치도 좋고 메뉴도 괜찮아서 두 번 방문 때 모두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스누피와 엘모 존에는 엄청 큰 실내 시설이 있다. 엘모는 내부에 어트랙션도 있다. 네 살이 놀기에는 스누피가 재밌는 것도 많고 위험한 요소도 없어서 더 좋았다. 더위도 피하고 잠시 쉬었다 가기에 좋다.
유모차 차양막, 얇은 블랭킷 덕분에 아이가 잠들었을 때 유모차에 뉘어두고 어른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 해리포터를 정복했다. 쿨시트와 미니 선풍기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네 살의 등과 엉덩이를 지켜줄 수 있었으니!
해유관(카이유칸)
정말이지 감동이었던 곳. 동물원과 수족관을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가려면 가겠거니 했었다. 수족관 앞에 도착했을 때도 큰 감흥이 없었다. 전날 유니버셜에 다녀오느라 아작 난 발바닥으로 찌는 더위에 입장시간이 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시간이 되어 들어가니 직원이 유모차를 보고 뭔가 뒷길 같은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8층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왜 꼭대기로 올라가나 의문이 들었다. 수목원 같이 생긴 곳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니 세상에나, 엄청 큰 수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해수면 높이에서 부터 해양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운데 가장 큰 수조를 두고 그 주변을 둘러 내려가도록 만들었는데, 깊이와 너비가 대단한 수조 속 동물들이 왠지 모르게 평화로워 보였다. 그중에 바다사자는 수조 밖의 관람객과 교감하기도 했다. 우리 집 네 살도 들고 있던 작은 물건을 따라 쫓아오는 바다사자와 한참 동안 놀다 왔다.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수족관을 지은 사람은 관람자와 동물 모두를 생각하며 만들지 않았을까?
레고 디스커버리 센터
우리나라 키즈카페 규모의 레고랜드다. 실내에 구성되어 있고, 두 개의 어트랙션과 다양한 체험존이 있었다. 오사카를 레고로 재현한 코너도 있었는데, 거기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조명으로 낮과 밤을 표현해 건물의 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것을 다 즐기고 오려면 6세 이상의 레고 러버와 함께 가야 한다. 네 살이 푹 빠져서 놀만한 건 없었지만 형누나를 따라가야 하는 영유아가 시간 때울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있긴 있다. 레고 디스커버리 센터에 어린이를 동반하지 않으면 어른은 입장할 수 없다. 일부러 여기만 가려고 덴포잔에 방문하기엔 조금 아깝고, 해유관 옆에 있으니 함께 들르면 좋을 것 같다.
소라니와 온천
우리나라 찜질방처럼 목욕도 하고 쉬다 올 수 있는 곳. 유카타를 입어볼 수 있다. 살쪄서 퉁퉁한 내가 입어 본 것은 별 감흥이 없었고 작은 유카타를 입은 네 살이 너무 귀여웠다. 탕에서 길게 몸을 지질 순 없었지만 따뜻한 물로 씻고 시원한 커피도 마시고 하이볼과 함께 저녁까지 해결하니 휴양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별로 없을 때 방문해서 휴게실을 통째로 빌린 기분이었다. 네 살이 신나게 뛰어놀다 낮잠까지 쿨쿨 잔 덕에 우리도 좀 쉬었다.
난바 파크스 / 난바 시티
텍스리펀이 가능하고 간사이 공항까지 오고 가는 고속 열차(라피트) 정착역이라 일본 도착 혹은 귀국 일정에 꼭 포함되는 쇼핑몰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다른 이유로 즐거웠던 곳. 뜨거운 햇살을 피해 하루를 보내기에도 충분히 좋다. 아무런 정보 없이 눈에 들어온 스시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맛있어서 계속 ‘한 점 더!’를 외쳤다.
뽑기 기계가 말도 못 하게 많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오락실 같은 곳이 있었다. 4세는 뽑기와 자동차 게임(실제로 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운전대 잡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에 심취했다. 거기에서 남편과 제부는 갑자기 코인 따는 게임기에 빠졌는데 둘 다 표정이 문구점 앞을 서성이는 아주 개구진 초딩 같았다. 나와 남편은 대규모 캠핑용품 샵 둘러보는 재미에 빠졌고, 동생과 제부는 좋아하는 의류 브랜드를 구경했다. 귀여운 뽑기에도 꽤 많은 돈을 들였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그 외에 방문했던 곳은 남편이 프라모델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갔던 덴덴타운, 내가 좋아하는 캠핑 브랜드 매장이 있어서 갔던 그랑 프론트 오사카, 오사카에 갔다면 당연히 들러야 하는 도톤보리, 쇼핑의 메카 돈키호테가 있다. 네 살에게 흥미로울 만한 게 없거나 네 살을 데리고 가기에 너무 복잡해서 진땀 뺐던 장소들이지만 오사카까지 갔는데 안 들르고 그냥 올 수 없지 않은가!
네 살은 여전히 종종 일본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던 일본 말을 따라 하며 웃고, 어떤 단어가 일본어로 뭐냐고 자주 묻는다. 그러니 나도 계속 일본 여행을 떠올린다. 우리가 서로 바라보던 순간을, 함께 보고 왔던 것들을 추억한다. 모두에게 네 살과 같이 떠날 용기가 만땅으로 생겼다.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그게 어디든 조금 덜 걱정하고, 덜 초조해하고,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