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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May 14. 2023

네 살과 떠나는 캠핑 3

매향오토캠핑장

금요일 출발, 2박 일정으로 계획했던 올해 두 번째 가족 캠핑은 서른여섯(남편)과의 싸움으로 시작했다. 네 살이 잘 때가 되어 재운 것뿐인데,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잠든 아이를 보더니 한숨을 푹 쉬는 게 아닌가. 여행 떠나기도 전에 기분 상하고 싶지 않아서 웬만한 일은 그냥 넘기려고 하는데 이건 너무 화가 나서 넘겨지지가 않았다. 네 살이 쿨쿨 자는 동안 한바탕 서로 쏟아내고 가는 길엔 내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네 살은 이상한 기류를 알아챘으려나. 말을 걸기는 싫고 우리 눈치를 볼까 봐 걱정은 되고. 캠핑장으로 가는 길 내내 화를 삭였다. 도착해서도 대화하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로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제발 그것만은 피하자고 혼자 되뇌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말문을 열었다. 잘했다 나 자신.


궁평항 근처에 위치한 매향오토캠핑장은 집에서 50분 거리에 있었다. 도심 캠핑장을 제외하면 우리가 가 본 곳 중에 가장 가까운 거리다. 그간 숲 속 캠핑만 해봤는데 매향캠핑장은 완전히 벌판이었다. 바람이 불면 피할 곳이 없을 것 같았다.





서른여섯은 캠핑 갈 때마다 피칭을 걱정한다.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둑해져서 피칭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긴 한데. 아직 그렇게 걱정할 만큼 어두운 시각에 피칭해 본 일은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꽤 빠르게 텐트를 완성했다. 거 보라고, 걱정할 거 없지 않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꾸욱 참았다.


정신없이 짐 챙기는 바람에 재워오지 못한 4세의 고기는 채소와 소금 간으로 후딱 볶아주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네 살도 잘 먹었다. 우리는 컬리에서 주문한 매운 제육을 볶았는데, 채소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어찌저찌 남은 채소를 털어 넣긴 했지만 아쉬웠다.


비바람에 텐트 문을 모두 닫았다. 네 살과 나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답답하기도 하고 이렇게 바깥도 못 볼 거면 캠핑에 왜 왔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엔 정말 방법이 없었다. 이래서 우레탄창을 다는구나. 꼭꼭 닫은 텐트에서 밤을 보내다가 다 같이 누워 잠이 들었다. 비가 밤새 많이 내렸다. 시끄러워서 깨기도 했다. 다행히 춥진 않았다.





텐트와 우리는 무사히 아침을 맞았다. 비를 잘 버텨냈다며 안심했으나 그다음은 돌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양평에서 맞은 바람은 애교였다. 종일 바람과 텐트를 검색했다. 캠핑의 가장 큰 적은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바람과 싸우지 말라는, 다년차 캠퍼들의 조언을 읽었다. 우리 텐트는 태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후기를 보았을 때는 희망도 품었다. 가이라인을 치라고 해서 비를 맞으며 보수공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조금 더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꽁꽁 닫은 텐트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던 네 살은 응가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매섭게 불며 텐트를 흔드는 돌풍이 무섭고 정신 사나워서 낮잠에도 쉬이 들지 못했다. 점심과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을 때도 잠들지 않고, 점심을 먹고도 잠들지 못해서 차에 태워 궁평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잠에 빠졌다.


바다를 보며 커피라도 마시려고 했는데 가로수를 보니 바람에 심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커피만 사들고 텐트를 지켜보러 돌아왔다. 차 안은 역시 평화롭고 조용했다. 텐트는 힘겹게 바람을 맞고 있었다. 한쪽 지퍼가 점점 열리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처량했다.





네 살이 잠에서 깨고, 다시 텐트로 들어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네 살은 뭔가 불안한 것처럼 자꾸 이너에 들어가자고 했다가 나가자고 했다가 하더니 급기야 무섭다고 했다. 바람에 텐트가 펄럭이는 소리가 싫었던 모양이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에 우리는 여기서 접기로 했다. 구워 먹으려고 펼쳐둔 소고기를 다시 덮고 빠르게 만들어진 북엇국은 아쉽지만 보내줬다.


어둠이 내려앉은 캠핑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정리했다. 네 살은 정리하는 동안 켜준 유튜브를 보다가도 갑자기 무서워서 내 손을 잡고 싶어 했다. 달래주고 다시 정리하고 또 달래주고. 그래도 둘이 힘을 합치니 금방 정리가 됐다. 캠핑장 근처의 국밥집에서 다 늦은 밤에 마지막 손님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왔다. 아쉬운 대로 셋이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고요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에도 바람을 만나면 싸우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야지.


다음 캠핑에는 바람이 안 왔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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