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의무 그 사이의 간극에 대하여
먼저 고백하고자 한다. 나는 임신하기 전에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적이 종종 있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기 전, 직장 통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 걸렸던 때가 있다. 혼자서 자취를 하던 시절에는 항상 서울 내에서 회사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크게 몰랐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 경기도에서 여의도까지의 출퇴근 3시간은 그야말로 눈 뜨자마자 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자차를 이용하자니 출퇴근 시간이 더 걸리고 그나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도가 최소 1시간 반이었는데 그 와중에 환승을 버스+지하철 도합 4번을 해야 했다. 일단 여기까지만 들어도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에너지가 소비될 것만 같이 끔찍하지 않은가. 그렇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던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출퇴근마다 유난히 사람이 미어터지는 시간대에 미어터지는 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알 거다. 그때는 노약좌석이고 임산부석이고 비워둘 여유가 없어서 꽉꽉 차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비어있을 때 앉아있다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지 않나?라는 마인드였다. 일반석은 물론이고 입석 공간조차 만석인 상황에서 굳이 임산부가 없는데도 자리를 비워두는 건 낭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어리석게도 임산부가 계시다면 당연히 말씀을 하시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종종 임산부 배려석에 자리가 나면 그 자리에 앉아서는 임산부가 주변에 있는지 살필 생각도 못하고 이어폰으로 귀를 닫은 채 폰만 바라보고 있었지 싶다.
누군가가 "저기요, 임산부 앞에 있어요!"라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와 고개를 들었는데 글쎄, 임산부 배지가 떡하니 내 앞에 있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어엇 죄송해요, 몰랐어요." 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비워드린 적이 있다. 속으로는 아니, 왜 말씀을 안 하셨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한편으로 말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동안 내가 모르는 사이 임산부 분들께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뒤로는 힘들더라도 다시는 임산부석에 앉지 않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런 조금은 부끄러운 경험을 기억하며 나는 어느 날 임산부가 되었다.
임산부가 되고 가장 먼저 하는 게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하면서 배지를 받는 일이다. 배지를 받고 보니 어렴풋이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고, 그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일단 나는 임산부가 되면 당연히 비켜달라고 말해야지.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막상 임산부가 되어보니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의무도 아닌 배려를 감히 강요할 수 없었다. 차라리 옆에 계신 임산부를 위해 양보를 해주시겠어요?라고 하는 게 더 쉽지, 임산부인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시겠어요?라고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사실 배려를 부탁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100% 기꺼이 응해준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말을 섣불리 할 수 없는 이유는 세상이 모두 내 뜻과 같지 않기에 배려를 거부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배려석 앞에서 최대한 배지를 볼 수 있도록 시야에 열심히 배치를 해보고, 100% 봤음에도 비켜줄 생각이 1도 없어 보이거나 눈을 감아버리고 자는 척을 시전 하는 인간들 앞에서는 그냥 빠른 포기를 하게 되더라. 노쇠한 어르신들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배지를 보고도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 젊은 여성들이 꽤 많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사실 비켜줄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켜주지 않을 사람이 그 자리에 당당하게 앉아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지 않아도 임신으로 인해 힘들고 예민해진 신체와 정신을 그런 상식밖의 사람을 상대하는데 쓰고 싶은 임산부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일반석이 텅텅 비어있는데도 굳이 굳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아. 이건 뭐 사정이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인간적으로 그러지 맙시다!!
아, 물론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 몇몇 비상식적인 인간들이 떠올라 잠시 말에 날이 섰는데 몇 가지 따뜻한 썰을 풀어보자면, 그날도 배려석의 한쪽에서는 아예 숙면을 취하고 계신 할머니가 계셨고 한쪽에는 그나마 젊은 여성분이 계셔서 조용하게 배지를 시야에 넣어드렸음에도 미동이 없으셔서 포기하고 있던 찰나, 뒤에서 일반석에 앉아계시던 여성분이 나를 부르더니 본인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따뜻한 배려 감사합니다.
한 아주머니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계셨고 앞에 서 있던 나랑 눈이 몇 번 마주쳤는데도 먼산을 보시길래 이번에도 포기하고 임신도 해보셨을 법한 분이 왜 그러실까. 생각하던 찰나 그제야 내 배지를 발견하셨는지 "아이고, 이제야 봤네. 하시고는 여기에 앉아요 미안해요" 하면서 자리를 내주셨다. 그 와중에 옆에서 자리를 노리던 아주머니가 마치 하이에나처럼 재빠르게 자리에 앉으려 하셨는데 "임산부 있잖아욧!" 하고 칼차단까지 해주셨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배려를 받았다. 아마 배가 많이 나오기 전이라 몰라 보셨던 것 같고 정말 배지를 늦게 발견하셨던 거다. 알았더라면 바로 비켜주셨을 분인데 고새 속으로 비난을 하고 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지하철에서 에피소드가 다양한데, 그래도 그나마 지하철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문화가 지옥철 시간대를 빼면 잘 형성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반면, 버스에서는 그런 문화가 전혀 형성되어있지 않다. 돌이켜보면.. 나도 버스에서는 딱히 비워둘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하철보다 버스에서 양보받는 난이도가 훨씬 어려워 빠른 포기를 하게 된다. 나는 지하철+버스 환승 루트의 출퇴근을 이용하느라 매일을 버스와 지하철 둘 다 타야 했는데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버스 앞쪽에 위치한 2개의 임산부 배려석은 꽉 차있었고 두 분 다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여 그냥 앞에 서있었는데 그 뒤에 타신 남자분이 여기 앉으시라며 일반석을 양보해 주셨다. 아마도 내 또래의 와이프분이 있는 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지하철도 아닌 버스에서 자리양보해 주신 남성분께 감사합니다.
또 하나 생각난 조금 특별했던 버스 에피소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나와 같이 임산부 배지를 단 노랑머리를 한 여성분이 계셨다. 얼굴을 보니 외국인 임산부였다. 외국인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탔고 그 뒤를 내가 이어 탔다. 그날도 여전히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 2석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먼저 외국인의 배지를 보고 뒤에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그래서 2개의 배려석 중 두 번째 좌석에 외국인이 앉게 되었고 나는 첫 번째 좌석 앞에 서게 되었다. 첫 번째 좌석에는 젊은 여성분이 앉아 계셨고 딱히 비켜줄 기미는 보이지 않아 익숙한 듯 포기한 채 서있었는데 갑자기 외국인 임산부가 나를 톡톡 치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앞에 앉아있는 분을 가리키며 "(앞에 분) 임산부예요?" 하고 내게 물었다. 그분은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아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더니 앞에 분을 부르더니 "여기 임산부 있어요~" 하고 무해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고, 젊은 여성분은 나를 보더니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감사 인사를 하고 앉아서 뒤를 돌아 한번 더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마운 마음을 뒤로 꽤나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어쩌면 나에게 말할 용기가 부족했던 건 아닌지, 막상 목소리를 냈을 때 생각보다 사람들은 냉정하지 않을지도..?
이 외에도 종종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착하신 분들이 일반석에서 본인자리를 많이들 내어 주셨다. 이럴 때면 가파르게 하락했던 인류애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다. 너무 감사합니다. 받은 배려들을 다시 베푸는 것으로 꼭 갚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