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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lany Dec 05. 2018

#서평 37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

군터 뒤크 저, [경기변동에 대한 거의 모든 것]


 투자자들에게 '경기변동'이란 독이 든 성배 같습니다. 경기변동으로 인해 엄청난 기회가 창출되기도 하고, 경기변동으로 인해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경기변동에 대한 공부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기회를 창출하는 전자의 경우 때문이 아니라 후자의 경우 때문입니다. 복리의 위대함을 장기간 누림으로써 큰 부를 이루겠다는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수익률은 가능하다면 물론 좋겠지만 사실 없어도 큰 상관이 없는 보상이지만, 치명적인 손실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군터 뒤크라는 저자는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이 책에서 경기변동을 이용하고, 관리하고, 나아가서는 없애버리는 방법 따위를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길고 반복적으로 설명합니다. 경기변동 자체가 어떤 절대자가 인간들을 벌 주기 위해서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인간들, 즉 경제주체, 스스로가 효율화 경쟁을 벌이는 것을 말미암아 발생하는 '대가'이기 때문에,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로 경기변동이란, 정확히는 불황이란, 사라질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보통 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한 국면이 되면 인간은 '국면적 본능'으로 말미암아 효율화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뒤따릅니다. 즉, 경기변동은 결코 우리 곁에서 사라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힘이 빠지는 논리와 결론입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런 저자의 논리가 책을 여러 차례 읽어봐도 크게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납득이 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스스로를 관찰해보면 저자가 말하는 효율화 경쟁을 벌이고 있고, 환경에 따라서 국면적 본능을 발휘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논리에 의표를 찌른 사람이 바로 위대한 존 메이너드 케인즈입니다. 경제주체, 특히 기업가들은 '야성적 충동'에 의해서 의사결정(투자 결정)을 내리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기의 변동성은 아주 장기간의 관점과 합리성을 갖춘 정부라는 주체가 보완함으로써 경기변동을 제어하고 그 진폭을 줄일 수 있다는 지혜를 전해주었습니다. '일반이론'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논리와 결론도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자가 말하길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투표를 통해서 선출되는 정부는 장기간의 관점을 갖기도 어렵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파티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음악을 꺼버리는 '인기가 떨어지는 정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위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경기변동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역시 부정하기가 어려운 논리입니다. 과거의 역사가 그걸 전부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좌절만 하고 있으면 나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 힘이 빠지는 논리와 결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책에서 건질 것은 아주 많습니다. 

 첫 번째는, 경기변동의 작동방식에 대한 통찰입니다. 제가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배운 개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이 '시차'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경기변동의 작동방식을 이해할 때에도 이 시차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책에서 돼지 사이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서 직접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요는, 돼지 사이클의 농장주인이나 육식동물이나 제 딴에는 아주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저자는 이를 '국부적 영리함'이라고 말하는데요. 국부적 영리함을 조기에 발휘한 주체는 큰 보상을 얻습니다. 문제는 그 국부적 영리함이 더 이상 국부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전개되면, 전체 경제가 아주 큰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은 '제한된 합리성(국부적 영리함)'과 '시차'입니다. 즉,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해서 경기변동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시차로 인해서 경기변동의 진폭이 커지게 됩니다. 즉,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이 아주 빈번하게 발생할수록 경기변동의 발생주기가 짧아지게 되고, 시차가 크면 클수록 발생하는 경기변동의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국면적 본능 즉 국부적 영리함의 작동에 대한 통찰입니다. 인간들은 아주 여유로운 환경에서는 사실 제한된 합리성을 띄지 않습니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영리해집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휴일과 평일에 각각 샤워할 때 물 온도 조절 스위치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예시를 통해 설명합니다. 즉, 시간이 여유로운 주말의 경우, 우리는 샤워기가 장기적으로 샤워하기에 적당한 수준의 물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물 온도 조절 스위치를 놓습니다. 그리고 아직 물 온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아 차가운 초반에 우리는 한껏 여유를 부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조금 보내고, 결국 쾌적하게 샤워를 합니다. 반면에 시간이 촉박한 평일 아침에 우리는 어제 정해둔 위치에 온도 조절 스위치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빨리 따뜻한 물이 나오라고 뜨거운 방향으로 확 틀었다가, 너무 뜨거운 물이 나와서 다시 차가운 방향을 조절을 하고, 물 온도가 차가워서 다시 뜨거운 방향으로 돌리길 반복합니다. 즉 쾌적하게 샤워를 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 행위하는 주체는 동일한 사람이고, 대상인 샤워기도 동일합니다. 달라진 건 그에게 주어진 샤워 시간밖에 없습니다. 즉, 분명히 여유로운 시기(호황기)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던 경제주체도, 빡빡한 시기(불황기)가 오면 국면적 본능에 의해서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하게 되고, 그건 비단 해당 경제주체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일반적인 것이 되고, 그것이 불황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네,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불황기에도 우리가 여유를 같고 의사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그런데 그건 월요일에 샤워시간이 부족해서 고생을 했다면, 출근 시간을 늦추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퍽 높은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시차의 작동에 대한 지혜입니다. 시차가 변동성을 키우는 방식에 대한 지혜는, 한 실험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맥주 게임이라는 실험입니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요는, 맥주 실험에서 상점과 도매상은 제한된 정보와 함께 주문한 상품을 수령하는데 필요한 '시차'로 인해서, 잘못된 결정을 아주 오래 반복적으로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특정 시점이 되면, 그 잘못된 결정들이 한 번에 엄청난 손실을 발생시킵니다. 이 게임에서 제가 느낀 시사점은, 시차의 무서움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발휘하는 개체이며, 원래 국부적으로 영리한 행태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시차가 없다면 이런 제한된 합리성의 결과인 미련한 의사결정의 대가를 분할해서 치르게 되고, 이 경우, 그 대가로 인해서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시차가 결합되면, 인간과 우리 경제는 제한된 합리성에 근거해서 내린 잘못된 의사결정의 대가를 한꺼번에 부담해야만 하고, 시차가 길어질수록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 대가의 규모가 커집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당연히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버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네 번째는, 경기변동의 불가피함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과 물리적인 시차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국면적 본능으로 인해서 우리 경제가 경기변동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변동 그 자체를 인정하고, 언제든지 경기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외 변수에 민감한 한국경제에 뿌리를 두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산을 원화 표시 자산과 외화(달러화) 표시 자산으로 분산하여 경기변동이 발생했을 때 입을 피해를 줄이도록 아예 개인적인 시스템 자체를 설계해두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대비를 한다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기변동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전자인 큰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건질 개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책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내용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글이 중간 이후부터는 다소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약간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제가 워낙 인상적이고, 내용도 필요한 내용들인지라 잘 안 넘어가는 책장을 꾸역꾸역 넘기면서 끝을 본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조선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제한된 합리성과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는 선박 시장과 해운 시장) 책값은 충분히 해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호황 vs 불황'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이 되어서 구매도 수월한 편이니, 경기변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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