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규 저,
[투자의 가치, 이건규 저]
오랜만에 가치투자에 대해서 다룬 책을 들고 왔습니다. 가치투자 명가 중 한 곳인 VIP 자산운용(前 VIP 투자자문)에서 CIO까지 역임한 이건규 매니저님의 투자의 가치라는 책입니다. 페이스북 등에서 이 책에 대한 호평을 접한 터라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책을 가져오는 게 조금 번거로운 입장인지라 이제야 읽고 서평을 작성합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책을 구매하는데 별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이력이 워낙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고 난 후에 사실 약간 실망을 했었습니다. 택배로 받아 든 책이 생각보다 너무 작고 얇았기 때문입니다. 실용적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책이기를 희망했는데, 막상 실물로 받아본 책은 상당히 얇고 작은 단행본이었기에, 오랜 기간 투자를 해온 매니저의 에세이집이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본 책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유경PSG자산운용의 강대권 님의 추천사를 보면 "무게감보다 간결함에 더 비중을 둔 느낌. (중략) 산전수전 겪은 고수의 노하우의 미덕이 단숨함에 있듯, (중략) 꼭 알아야 할 핵심만...(생략)"라는 말이 나오는데, 제가 읽고 나서 느낀 소감도 같습니다. 정말 작지만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었습니다.
우선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매우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이지만 고루하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수십 년 간 가치투자를 해온 경험자가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 상식적인 조언을 건네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가치투자에 대해서 상식에 부합하는 설명을 하면서 동시에 현재 투자 세계에서 가치투자자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변화에 대해서 짚어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서 꽤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해주는 리서치 프로세스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펀더멘탈 분석을 '산업 분석 - 기업 분석 - 재무제표 분석'이라는 3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짚어주는데 정말 유익했습니다.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서울대학교의 SMIC라는 투자동아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실 텐데, SMIC의 홈페이지에서 리포트를 보다 보면 상당히 체계적으로 분석을 한다는 감상이 들곤 했는데, VIP 자산운용의 이건규 매니저님의 리서치 프로세스도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제 기억도 상기시킬 겸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산업 분석 부분을 보겠습니다. 저자는 산업 분석에 앞서서 국내 10대 업종에 대해서 업종별 Key Factor와 투자 아이디어가 될만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직접 보시면 될 것 같은데, 업종별로 1~2페이지 남짓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해당 산업을 분석할 때 무엇에 초점을 두고 봐야 할지 확실하게 감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정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산업 분석을 여러 차례 하면서, 처음에 가장 난감했던 부분이, 분석을 하려면 조금 더 힘을 줘야 하는 부분이 있고 조금 여유를 갖고 해도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상당히 고되게 분석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산업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할 때, 분석의 큰 뼈대를 잡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업종별 Key Factor라는 자료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업 분석은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고, 경제적 해자에 대해서 확인하고, 성장 동력을 체크하는 것을 포인트로써 전합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제가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비즈니스 모델 분석에서 제품과 비즈니스 특성에 대해서 이해하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조선업에 대해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를 해본 후에, 다른 산업이나 기업을 공부할 때, 일부러 자료를 더 모으는 항목이 바로 제품에 대한 자료입니다. 분석 대상 기업의 제품이나 상품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보를 갖고 분석을 임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상당한 효율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그 산업에 대해서 공부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어 보이는 제품들이 사실 공정 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서 기업의 이익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제품으로 취급해도 큰 무리가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비슷해 보이는 몇 가지 제품들이 사실 경제적 실질로는 큰 차이가 있어서 개별 제품들을 따로 떼어내서 살펴봐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 재무제표 분석에서는, 여러 디테일한 팁을 전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연결재무제표와 개별/별도 재무제표의 차이점 같은 것들입니다. 아직도 종종 질문을 받는 사항인데, 연결재무제표에서 볼 수 있는 '지배주주 순이익', '지배주주 자본금'이라는 항목, 혹은 반대로 '비지배지분 순이익' 등의 항목에 대해서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중요하지만 자주 놓치는 사항들에 대한 설명이 많았습니다.
물론 제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재무제표 추정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미래 재무제표 숫자를 아주 정밀하게 추정을 할 필요는 사실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차피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정을 안 할 수도 없습니다. 회사의 수익가치를 추정하지 않으면 기업가치에 대한 추정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가치투자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추정을 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재무제표 추정을 하는 체계적인 단계와 각 단계별로 챙겨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 저자의 노하우를 전해줍니다. 매출 추정 - 영업이익 추정 - 법인세 차감전 순이익 추정이라는 큰 뼈대를 두고, 거기서 매출을 추정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책을 보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입니다. 되게 상식적이고 또 당연해 보이는 사항이지만, 막상 자신의 투자 의사결정이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에서 이런 체계적인 방법론을 공유한다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히 얇고 작은 책이라서 읽는데 큰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 읽고 난 이후 새삼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저자가 간결함과 단숨함에 무게를 둔 만큼, 무심코 넘겼던 줄들 사이에 미래의 큰 손실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사항들이 섞여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읽고,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정리를 하면서 다시 읽었지만 아마 앞으로도 두고두고 꺼내볼 책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연히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