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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inar Flow Jul 23. 2022

'어쩌다 한 번 착한 일'로 포털에 등록당하다

미니멀하게 살기로 결심한 후로 늘 좁고 깊은 대인관계를 선호하고 있고, 냉소적이란 단어로 지금 라이프스타일을 대신했다. 그러다 맘 내키면 정말 어쩌다 착한 일을 할 때도 있는데, 바로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프로필에 썼듯이 지금 난 음악, 영상, 글을 이어 붙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정확하지 않은 작년, 한 독립영화감독을 만나게 된다. 만난 사연도 조금 웃긴 게, 협업 때문에 만난 게 아니라 중고장터에서 연락이 닿았다. 내가 올린 상품 판매가 어쩌다 불발이 됐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부록을 선물했다. 부록이라고 해봐야 영화감독들의 온라인 클래스를 PDF화 한 것이었다. 그녀의 열정이나 실행력에 나도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계절이 한번 바뀌기 전에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그때 음악 하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영화음악도 가능하세요?"


"영화음악은 해 본 적이 없어서요.."


자신이 없었다. 적극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사람이라,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퀄리티가 안 높아도 된다고 했지만, 영화란 단어를 무겁게 생각하는 편이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럼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해볼게요."


내가 이렇게 말할 때는 말 그대로 경험을 위해서 하겠다는 뜻, 즉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해 본 적 없는 분야에 돈 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니..

다행히 당시 같이 작업하던 네덜란드 프로듀서 친구가 있었는데, 그를 꼬셔 작업에 착수했다.


2-3주 후 작업물이 나왔다. 그녀는 결과에 만족해했다. 퀄리티가 정말 높아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다시 계절이 한번 바뀐 며칠 전, 그녀에게서 온 카톡. 영화 O.S.T가 국내외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됐다는 소식이다. 많이 기뻤고, 그보다 몇 배는 묘했다.

기분이 묘했던 첫 번째 이유는, 국내엔 아직 내가 만든 음원이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해외에서 먼저 시험해보고 싶었다), 두 번째는 예전엔 그렇게 악을 써도 안되던 포털 인물검색 등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케터였던 시절, 또 작가였던 시절, 마찬가지로 포털에 이름을 등록하려고 했지만 늘 실패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한 이 프로젝트 때문에 숙원이었던 일이 풀려버렸다. 이럴 때 새옹지마라는 단어를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떠오르는 단어는 있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

 

물론 그녀를 도와서 생긴 일이지만, 내가 하는 일들은 그녀를 돕기 전에 스스로를 돕기 위해 시작한 것들이다. 그것들로 벌어진 결과라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하는 일들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열정과 마음을 예쁘게 봤던 것 같다.


'나를 돕는 일을 이어왔기에 남을 돕는 일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날인 만큼, 이 잔향은 꽤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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