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차이의 함정
내년부터 일본에 정착할 예정이고, 그 전에 미리 살아보기 위해 몇 달 머무르고 있다. 한국 일본은 비슷한 게 많으니까 문화차이는 크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그 생각이 조각난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여자친구는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한시간 이상 통화하는 걸 보며 그려려니 했는데.. 조금 후에 폰을 확인해 보니 택배가 다녀갔고, 나중에 다시 온다는 거였다.
한국인이라면 알지 않나. 집에 있으면서 택배 못 받는 게 얼마나 x신 같고 기분 나쁜 일인지. 나만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너무 화가 나서 물었다.
'전화하면서 택배 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돌아온 대답이 기가 찼다. 다시 전화해서 가져다 달라면 되니까 괜찮다는 거였다. 약간 이해가 가긴 했다. 전 직장에서 부당해고 비슷한 일을 겪었고, 기분 좋지 않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니까.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돌아다녔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과도기라서 그런지, 이런 문제를 겪을 때마다 혼란스럽다. 늘 하나의 질문이 따라다닌다.
‘이걸 문화차이로 받아야 돼, 말아야 돼?’
아마 경험이 더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올 것 같다. 어떤 해답을 내리더라도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는 게 경험의 역할이 아닐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 이 해답은 경험이 해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더 경험이 더 적었을 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늘 문화차이의 함정에 빠지곤 했다.
어떤 커플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문화차이를 끌어들인다고 했다. ‘한국은 이래, 일본은 이런 거야’라는 것 말이다. 그쪽 관점으로 바라보면 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간극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내가 내린 대답은 ‘아무런 해답도 내지 않는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또다시 큰일이 아닌 것이 될 것이고, 익숙함이 해결해 줄 거라 믿는다. 어린아이에게 동생을 괴롭히면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말해줘도 마음으로 이해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듯이, 시간과 경험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잠시 뒤로 미뤄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