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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Jul 07. 2021

3회차: MBTI J형의 한달살기에서 벌어지는 일

느슨한 루틴을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꾸려가는 하루





강릉에 오면서 나에게 주어진 건 한 달이라는 무한한 자유시간이었다. 따져보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보내는 여름은 만 5세 유치원 입학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 후엔 방학생활을 채우거나(나이가 짐작되려나...) 학원 모의고사를 치르거나 계절학기를 듣거나 스터디를 하거나 토익공부를 하면서 여름을 보냈다. 회사원이 된 다음엔 일주일의 짧은 여름휴가를 기다리고 만끽하고 아쉬워하며 여름을 났다. 


그러던 중 무소속 생활자가 됐고, 강릉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강릉에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보내든, 24시간 서핑을 하며 지내든 온전히 내가 맘껏 쓸 수 있는 하루하루가 주어진 거다.


문제는 내가 MBTI의 유형 중 극단적 계획성을 지닌 J형이라는 사실이다. 

J형의 특징은 이렇다고 한다.


출처: https://sexybill.tistory.com/45



J형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걸 두려워한다. 모든 상황이 자신의 통제하에 이루어져야 안정감을 느낀다. 나 같은 경우엔,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가 친구들이 즉흥적으로 "한강 갈까~?" 물으면 말로는 '좋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그리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쓰다보니 내가 도대체 어떻게 무소속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하지만 퇴사 또한 작년부터 철저히 계획한 것이긴 했다. 절레절레).


 



강릉에서의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오만 군데 호언장담했지만 성격상 못할 것이 빤했다. 그래도 그간의 삶과 아주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었다. 일 그만두고 강릉까지 내려가서, 살던 대로 사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그 중간에서 타협해보기로 했다. 약간의 루틴을 만들고 나머지는 그날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지내보는 거다. 강릉에 내려가기 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는 아침 요가에 등록했다. '아침'이라지만 된새벽은 아니고 오전 10시 타임이다. 땀범벅이 된 채 요가를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점심을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1시가 된다. 그러면 잠시 나의 상태를 살핀다. 


졸린가? 그럼 잠시 낮잠을 잔다. 직장인은 엄두도 못 낼, '침대에 누워 대자로 뻗어 자는' 달콤한 시에스타를 즐긴다. 


나가고 싶은가? 맘속 끌리는 곳이 어딘지 다시 생각해본다. 오늘은 '숲 느낌'일 수도 있고, '바다 기분'일 수도 있다. 커피가 먼저 당긴다면 해변가 카페로 차를 몬다. 





마음 가는 대로 다니다보면 이렇게 예쁜 노을도 만난다. 



마음 가는 대로 다니면 거기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이 있다는 걸 안다. 나도 아는데, 극단적 J형에게는 역시 쉽지 않다. 그래도 이건 할 수 있다. 느슨한 루틴을 정해두고 그때그때 마음과 몸을 살펴 하루를 꾸려가는 것. 즉흥적으로 마주하는 풍경도 결국 내 마음과 몸이 이끈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오늘이 딱 일주일째인데, 이제 강릉에서의 리듬이 어느 정도 생긴 것 같다. 온전히 나만의 리듬이다. 






여기엔 좀 긴 글을 쓰고 있지만, 무소속 생활자로 살아가는 하루 한 장 짧은 일기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 무소속 생활자의 인스타그램 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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