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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Apr 18. 2020

우리, 결혼이라는 항해의 시작

매일 우리가 함께 겪어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에 대하여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기간이었다. 아침 아홉시에 첫 시험이 있어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섰다. 보통은 신촌역에 내려 십여 분을 걷지만 이날은 몸도 머리도 무거워 이대역에 내려 후문을 지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한여름이라 새벽길도 대낮처럼 환했다. 이대역에 내려 학교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니,


네가 있었다. 


너도 일 교시 시험이라 일찍 학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같이 기다려 버스에 올라탔다. 새벽 버스라 텅 비어 있었지만 우리는 앉지 않았다. 두어 칸 간격을 사이로 손잡이를 하나씩 나눠 잡고 조금은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전까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더러 술자리도 함께했지만 그건 언제나 여럿이서였다. 세 개의 정류장을 지나며 우리는 버스 세 정거장을 지날 만큼만의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시험은 어땠으며, 방학엔 무얼 할 계획이며, 어떤 공부를 더해야 하는지. 그러다 버스가 멈췄고, 후문에서 내리는 나를 따라 너도 함께 내렸다. 나는 평소처럼 후문 쪽 편의점에 들렀다. 네게 커피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비싼 거 마셔도 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작은 캔커피를 집어들던 네게 나는 말했다. 그런 거 말고 더 좋은 거 마셔도 돼. 커다란 커피를 하나 집어들어 네게 건넸다. 그리고 함께 편의점을 나왔다. 더운 기운이 막 시작되려는 아침 일곱시였다. 나는 도서관으로, 너는 열람실로. 시험 잘 보라는 인사를 건네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얼마 전 그 여름의 아침이 기억나느냐고 네가 물었을 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네게 그날의 여름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마치 네 기억이 내게 옮겨온 것처럼.


일곱 해 전의 여학생과 남학생은, 우리가 부부가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바로 옆에 서는 것도 어색해 손잡이 두어 개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눴던 우리는, 일곱 해가 지나 매일 마주앉아 저녁을 함께 먹으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이 년이 되어간다. 결혼이라는 건, 이전까지의 나를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결혼은 사건이 아니라 순간이며,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 매일 다른 일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매일 우리가 '함께' 겪어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일상이라는 배를 출항시키고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공동 선장이다. 배가 고장난 곳은 없는지, 지도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 물이나 식량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만일 연료가 떨어진다면 어디에 불시착해야 할지, 함께 탄 선원 가족들의 심리적 상태는 어떤지, 항해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해서 결정해나간다. 결혼이라는 항해를 순조롭게 이어가기 위해서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더해야 할지,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믿음. 그러나 항해가 더해갈수록 깨달았다. 내가 믿어야 할 것은 나와 항해하는 반려자라는 걸. 그가 생각보다도 더욱 내게 의지하고 있으며, 나 또한 그럴 거라는 믿음. 그와 내가 마음을 더해 이 항해를 무사히 마칠 거라는 믿음. 


A celebration of our journey. 


우리가 청첩장에 새긴 문구다.

이 항해에 대한 글을 써볼 것이다. 사랑과 신뢰를 더해가며 그 여정의 지도를 그려보고, 매일같이 우리가 밟아가는 일상의 나날들을 포착하여 세심히 풀어내고 싶다. 끈끈하고 포근하고 진실하고 유쾌한 이 여정의 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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