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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Apr 19. 2020

취미 수집가들

'딴짓'이라는 이름의 탄생

그후 우리는 매주 만나서 기획회의를 했다. 먼저 우리 셋의 관심사를 살펴야 했다. 책을 만든다는 건, 곧 세상에 무언가 메시지를 던진다는 걸 뜻했다. 우리 셋이 공통적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단행본도 아닌 잡지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확연한 공통점은 우리 셋 다 퇴사의 경험이 있다는 거였다. 퇴사를 목전에 두고 날 만났던 1호야 당연하지만, 3호와 나 또한 두 번의 퇴사 경험이 있었다. 사기업과 공기업, 회사원과 마케터와 방송사 PD. 회사도 업의 형태도 달랐지만 어떤 길에서 벗어나본 경험이 있다는 건 우리를 자연스레 이어주었다. 당시에는 퇴사가 지금처럼 흔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퇴사를 한다는 건 굉장한 용기와 대담함과 무모함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단지 ‘퇴사’만 가지고 잡지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외려 회사 다닐 때 우리를 매혹한 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셋 다 ‘취미 부자’였다. 1호는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있었고, 타로카드로 점을 볼 줄 알았다. 올림픽 공원의 러닝 클럽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달리기를 하고 퇴근 후에는 곧장 카페로 가 글 한 줄이라도 끄적거리다 귀가하는 사람이었다. 3호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했다. 뜨개질로 노트북 파우치를 떴으며 쿠키와 스콘을 구웠고 화가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그림도 곧잘 그렸다. 나는… 당시 수강 중독자였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관심 있는 작가들의 북토크에 참석했으며 상상마당에서 하는 독립출판 제작 수업도 들었다.


우리는 거의 취미 수집가에 가까웠다. 다만 돈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지 않는, 세상 만고 쓸데없는 취미였다. 기획회의를 빙자해 우리는 자주 신세 한탄을 했다.


“어휴, 우리는 왜 이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걸까요.”

“그러게요. 재밌는 건 회사 밖에 다 있다니까요?”

“인생 그래프가 올라가지는 않고 제자리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그럼 우리는 계속 ‘여기가 아닌 거기’만 찾고 있는 거네요?”

“오, 맞네? 그럼 우리 잡지의 제목을 ‘여기가 아닌 거기’로 해볼까요?”




독립출판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 독립출판』의 저자로 참여했다. (2016)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독립출판 제작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잡지를 기획하던 때였다. 마침 제목이 정해진 즈음에 수강생들과 처음으로 회식을 하게 됐다. 각자 자기가 만들고 싶은 출판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저러해서 잡지 제목을 ‘여기가 아닌 거기’로 해볼까 해요.”

“그래요? 은주님이 만드는 잡지에서는 그럼 뭘 다루는 거예요?”

“음… 정해진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딴짓을 하며 자기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아요.”

“‘딴짓’이라는 키워드 재밌는데요? 아예 제목을 ‘딴짓’으로 해보는 건 어때요?”

“딴짓? 직관적으로 와닿고 좋은데요?” 


바로 멤버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결과는 만장일치. 독립출판 잡지 『딴짓』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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