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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Sep 11. 2023

귀뚜라미 우는 작은 방

1년 8개월을 함께한 곳의 마지막을 추억하며


 밤이면 귀뚜라미가 끊임없이 귀귀거리며 우는 작은 오피스텔. 방의 가장 큰 부피를 찾이했던 퀸 사이즈 침대가 중고 나눔으로 떠나고 빈 자리에 덩그러이 놓인 얇은 토퍼에 어색함을 느낀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지만 침대가 떠난 빈 방에 울리는 목소리에 우리는 낮설음을 느낀다.


 병원 기숙사에서 오래 살 수 없었기에 독립을 결심하고, 여지것 모은 약간의 돈과 은행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보러 다녔다. 당시에 매물이 적었기에 한 달을 기다려 간신히 나온 매물은 여타 닭장 마냥 갇힌 상자가 아닌, 한쪽 벽이 테라스로 된 넓직해 보이는 방이었다. 감옥마냥 답답한 구조가 싫었던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생애 처음으로 전세 계약을 쓰는 날, 집주인은 홀몸인 나에게 애인은 들여도 동물이랑 벽걸이 TV는 들이지 말라 하셨다. 그의 말마따마 이 작은 전세방을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연인이 생겼고 이제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새로 이사갈 집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계약서를 바라보고 서로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으로 잔금을 치룬 날의 밤 - 테라스의 귀뚜라미 소리에 추억을 곱씹는다.


 보기에 좋았던 그 넓직한 테라스가 말썽인지 집주인이 보낸 인부가 테라스 보수공사를 하고는 깜빡하고 배수로를 막아놓아 장맛비에 온 집안이 넘칠 뻔한 아찔한 기억도, 화창한 햇빛 아래 건조대에 놓인 빨래가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며 상념에 젖었던 기억도, 햇볓이 잘 드는 테라스의 난간 위에 상추며 적겨자를 심어 키워 소소한 첫 수확을 누렸던 기쁨도...

 매미의 비명조차 녹아버린 유독 무더웠던 올해 여름이 지나감을 알리듯 밤새 지저귀는 테라스 귀뚜라미 선생의 독주곡을 들으며 이 곳에서의 추억이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나는 너무 정이 많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공간이던 간에.


나에게 남아있는 가장 어릴 적 기억은 마당이 있는 낡은 집 구석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준 흙더미를 작은 삽으로 뒤집으며 놀던 기억이다. 삽으로 흙을 뒤엎자 콩벌레일지 쥐며느리일 지 모를 작은 벌레가 깜짝 놀랐는지 등을 바닥에 대고 웅크리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다.

 일곱 살이 되어 도시로 이사가게 되며 그 집이 허물어지게 되는 날, 나는 어른들을 뿌리치고 방에 달려가 딱풀을 줏어왔다. 그 몇 백원 짜리 딱풀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일지, 한 아이에겐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을 지 모른다. 나의 첫 집은 부숴지고 공터가 되었다.


 그 이후로도 30여 인생 대여섯 번 이사를 다녔고 지금의 오피스텔보다 더 오래 산 곳이 많지만, 내 마음으로 품었던 집이라면 단연코 쥐며느리가 움츠리던 낡은 추억속 집과, 내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 30%에 자금대출 70%을 지렛대 삼아 구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가꾸어 온 이 귀뚜라미 우는 오피스텔이 마음으로 품은 집으로 느껴진다.

 앞으로 신혼으로 살아 갈, 은행이 대출해 준 집은 애정보단 부담이 심한 게 정을 붙일 지 모르겠다.


나의 작은 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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