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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수지 Mar 13. 2020

전략기획부라 쓰고 잡부라 읽는다.

갑자기 어린이 비타민을 팔아보라구요..?

그렇게 AMD 업무를 그만두고 조그만 회사의 전략기획부 부서에 입사하게 되었다.

전략기획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그저 블로그와 쇼핑몰 관련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날 다시 채용한 이 회사는 참 독특했다. 독특한 만큼 업무도 스펙타클 했고 이 회사는 나의 모든 업무 경험치를 조금씩 끌어올리기도 모자라 나의 업무 의욕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끌어올리기도 했다. 




전략기획부 부서가 만들어지다


얼마 전 즐겨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라는 드라마인데 임수정, 이다희, 전혜진 배우가 나와 포털사이트 회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은 드라마였다. 점유율 경쟁으로 인해 회사 내에 흩어져있던 여러 직원을 모아 별도의 TFT팀을 구성하여 마치 어벤저스 팀처럼 여러 프로젝트를 멋지게 해쳐 나가는 그런 멋있는 드라마랄까.

드라마처럼 멋지게 해내고 싶었지만..


TFT란 Task Force Team의 약자인데 회사에서의 TFT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각 부서에서 직원을 선발해서 팀을 별도로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내가 다시 입사한 회사의 전략기획부 부서는 마치 TFT팀처럼 만들어졌다. 


기존에 회사 내에는 대표님(외부 영업), 이사님(내부 운영), 디자인팀, 개발팀, CS팀 이렇게만 존재했었다. 이 회사는 대표님의 주도하에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기도 하고 접기도 하고 아주 특이한 회사였다. 


나는 기존 CS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내 꿈을 찾아 떠난 사이에 CS팀은 사업상 필요가 없어져 부서가 사라져 가고 있었고 그 멤버 중 업무 흡수가 빠른 한분만 회사에 살아남아 전략기획부 부서가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멋진 TFT팀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소기업이기에 부서 인원은 3명으로 확정이 났고 대표님이 외부에서 모셔온 의문의 팀장님, CS팀에서 살아남은 분, 그리고 되돌아온 나. 이렇게 셋이 전략기획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팀장님, 저는 이 부서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회사마다 많은 차이가 있는 전략기획부는 보통의 회사로 얘기하자면 회사의 비전이나 중장기 계획을 짜고 경영 환경도 관리하고 시장환경 분석도 하고 벤치마킹도 하고 시장조사도 하고 신사업 발굴도 하고 신규 사업 아이디어도 내고 KPI(성과지표) 수립도 하고 거의 모든 업무가 사업의 전체적인 전략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 오신 팀장님은 위에 쓰여있는 대로 회사의 전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짜며 거의 매일 문서 작업이 주된 업무였다. 하지만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던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막막했었다. 나를 무슨 생각으로 뽑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대표님의 전략기획부 미션이 떨어졌다. 


1. 화덕 요리 매장 오픈을 위한 사업 전략, 매장 운영 방안 등

2. 한우 정육 매장 오픈을 위한 사업 전략, 한우 쇼핑몰 운영 방안 등

3. 매장 마케팅을 위한 블로그 체험단 사이트 오픈 준비 및 운영 계획안 등

4. 대표님이 외부 영업상 받아온 어린이 비타민 판매하기 (???)


1번 2번 3번은 입사 전에 어느 정도 들었던 이야기라 그러려니 했는데 4번은 순간 뭐지 싶었다.

들어보니 어느 날 대표님이 외부 영업으로 인해 서울대의 한 연구소에서 개발한 어린이 비타민을 대행 판매해드린다며 구매해오셨는데 다른 사업으로 인해 영업상으로 가져온 거라 판매가 중요하진 않지만 이 많은 재고를 회사에 그냥 둘 수 없으니 전략기획부에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미션이었다.. 


일단 팀장님은 원래 전략 기획으로 일을 하시던 분이라 가장 큰 프로젝트인 1번과 2번을 담당하셨고 다른 한분은 3번을 그리고 나는 제일 애매하고 뜬금없었던 4번을 맡게 되었다. 전체적인 부분은 함께 회의하고 각자 담당한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대표님은 직원들한테 90도로 인사할 정도로 정말 흔치 않은 분이셨는데 이런 뜬금없는 일을 주실 때도 웃으면서 "비타민은 영업상으로 구매한 거라 팔아도 되고 못 팔아도 돼요. 부담 가지지 말고 안 팔리면 우리 애들 다 먹으라고 하지 뭐.. 근데 수지 씨 저번 회사에서 재고 상품 팔아봤다며?~ 잘해봐요!" 이런 느낌이었다. 이런 대화를 할 때까지만 해도 곧 다가올 어린이 비타민의 수량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곧 회사에 도착한 거대한 어린이 비타민 박스(2종류, 약 2,000박스) 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고 정말 막막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이 뜬금없는 어린이 비타민을 어떻게 팔 것인가?..


1. 상품 분석하기

전략 기획에 대해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일단 감으로는 상품이 무엇인지부터 분석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상품인지도 모르는데 고객에게 어떤 소구점으로 매력을 느끼게 하고 구매까지 이어지게 할 것인가가 가장 문제였다. 상품을 분석해보니 서울대 연구소의 한 연구책임대표가 만든 비타민이었고 이미 유산균과 관련된 여러 비타민을 만들었고 연구소 브랜드를 강조하며 판매 대행업체를 통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우리 회사로 오게 된 이 비타민은 아직 온라인상 판매가 진행되지 않은 상품이었고 이 서울대 연구소에서 성장 발달 물질을 연구하여 특허를 취득하고 만든 믿을 수 있는 비타민이었다.


우려했던 것보다 판매를 하기에 여러 가지 메리트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었다.

대표님의 영업용 구매였기에 생각보다 높은 단가에 비타민을 가져오셨고 성장 관련 특허를 받은 비타민은 판매가 약 12만 원, 또 특허를 받진 않았지만 미네랄 비타민은 약 3만 원대였다. 장점은 꽤 있지만 브랜드가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았기에 높은 가격이 단점이었다. 



2. 고객 분석하기

상품을 분석하고 나니 누구에게 팔아야 하는지 분석을 했다. 우선 가장 쉬운 관점으로 어린이 비타민이기 때문에 어린이가 섭취해야 하고 판매 대상은 자연스럽게 '엄마'였다. 하지만 단순히 엄마로 잡으면 너무 포괄적이기에 우선 가상의 고객을 생각해봤었다.


8~13세의 자녀를 두고 있고 자녀의 키 성장으로 고민이 많으며 자녀에게 쓰는 돈은 아깝지 않은 엄마

원래 고객 페르소나를 그리는 방법은 다양하고 더욱더 분석적이어야 하지만 당시의 나는 전략기획부가 뭐하는 부서 인지도 모른 채 입사해서 감으로 이 정도밖에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엄마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고객인 엄마는 온라인에서 주로 어디서 활동하는지를 찾아보니 30대 엄마들이 자주 애용하는 <쿠팡>의 로켓 배송, 지역별 활발한 맘 카페, 육아 블로그였다. 


맘 카페에 입점하는 데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기 때문에 우선 패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홍보할 수 있는 육아 블로그를 활용해보기로 결정했고 로켓 배송은 추후 마지막 재고들을 판매하는데 활용하기로 했다. 


일단 다른 프로젝트보다 중요성은 많이 떨어졌기에 당장 어떻게든 판매를 시작해보라는 사인이 떨어졌고 전체적인 판매를 어떻게 할지 그려보니 더 막막해졌었다.

브랜드 및 상품 랜딩 페이지 및 구매 플랫폼 구축(디자인 및 개발팀 요청) > 상품 마케팅 진행 > 고객 구매 > 택배 준비 (포장재) > 택배 발송 > 후기관리 > 상담 및 CS 관리


마케팅은 일단 뒷일이고 고객이 상품에 대해서 꼼꼼하게 볼 수 있는 랜딩페이지가 필요했었다. 당시에는 네이버 스토어팜이 아닌 오픈마켓, 소셜커머스와 카페 24로 만드는 쇼핑몰이나 랜딩페이지 형태가 유행을 하던 시기였는데 제품 2개로 쇼핑몰은 너무 거창했고 소셜커머스에 입점을 진행하기엔 높은 수수료가 문제였다. 고려 대상 중 랜딩페이지 형태가 가장 적당했고 우선 랜딩페이지 기획안을 만들어 디자인팀에 요청을 했었다.


하지만 이 곳은 소기업이다 보니 디자인팀에 디자이너는 한 명이었고 블로그 체험단 사이트 오픈 준비로 너무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서 우선순위상 당장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팀장님은 나에게 직접 랜딩페이지 디자인을 해보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하셨다.


AMD로 일하면서 상품 상세페이지 디자인이랑 배너 디자인 정도가 전부였는데 웹디자인을 하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일인가 싶었다. 그래도 AMD로 일할 당시 벤치마킹을 하며 조금씩 실력을 늘리기도 했었고 또 이런 다양한 경험을 아주 신나 했기에 일단 시작해봤다. 




처음으로 웹디자인을 하다..


웹디자인. 처음에는 그냥 쉽게 생각했었다. 배너 디자인을 하듯 다른 홈페이지들을 쭉 훑어보면서 포토샵에서 네모난 캔버스를 열고 홈페이지처럼 보이게 디자인을 하면 되겠지?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을 했다. 상품 사진도 없어서 바닥에 A4용지를 깔아놓고 사진을 찍고 누끼를 따서 사용하고 열심히 디자인을 했다.



요것이.. 바로 2015년 처음으로 만든 웹디자인 랜딩페이지 디자인의 첫 화면이었다. (지금보니 매우촌스럽네..) 원페이지 형태로 하단에는 동그란 버튼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버튼을 누르면 해당 이미지로 이동하는 형태로 구성했고 당시 이런 원페이지로 된 랜딩페이지가 유행을 하고 있었다. 


웹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기에..

레이어도 내 맘대로 만들고 사이즈도 내 맘대로 만들고 원페이지에 쭉 랜딩페이지를 그려내고 그야말로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일단 해보라고 해서 열심히 만들어서 팀장님에게 보여드리니 "일단 ok~ 개발팀에 넘겨봐~" 라며 아주 쿨하게 오케이를 해주셨고.. 개발팀에서 드디어 나의 작품을 보게 되고 나는 그렇게 개발팀에 불려 가게 되었다.


"수지 씨... 웹디자인 처음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 디자인을 주시면 아주 곤란해요. 일단 이미지를 다 분리해서 저장해주셔야 하고 사이즈 같은 거도 홀수 픽셀로 하시면 정렬할 때 개발하기가 아주 난감하고.. 이 물결... 은 개발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음... 허허허 허"


네...? 쭈글쭈글...



그렇게 나의 첫 웹디자인은 개발팀에게 불려 가 쭈글 쭈글이가 되었고 일단 디자이너가 바빠서 디자인은 팀장님 승낙이 되었기에 개발팀과 처음부터 다시 협업을 하며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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