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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Dec 09. 2023

괴물은 누구인가

나 역시도 또 하나의 괴물임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을 보았다.

뭘 그런 영화를 극장엘 가서 봐 하지만, 사실 난 이런 류의 영화들을 즐기는 편이다.


영화도 책도 작가나 감독에 대한 컬렉션으로 찾아보는데, 고레에다 감독님 역시 나의 최애 컬렉션에 포함된 감독님이기에 무조건 보아야만 했다. 내용을 몰라도 그저 믿고 무조건 보는 감독님. 흥행도 작품성도 무관하게 그저 내 스타일인 감독님들 말이다.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꿋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별 것 아닌 일상적인 내용들을 저마다의 입장에서 다시 보여주는 방식의 전개.


엄마의 입장에서는 불안을,

교사의 입장에선 부당함과 억울함을,

아이의 입장에선 두려움과 공포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행복을 보여준다.


삶은 단편적이지 않다. 입체적이고 유기적이다.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팽팽하게 긴장감을 이루며 삶을 만들어낸다. 관계라는 그 실은 하찮은 오해로 끊어지기도 하고, 또 돌아올 수 없는 방향으로 내던져지기도 하며 끈끈하게 결속되기도 한다.


주변인들의 입장은 사실 그저 주변에 있는 어떤 하찮은 의견일 뿐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삶과 결심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런 별 것 아닌 의견말이다.

그럴 때 그 주변인은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해받지 못하는 의견들은 주장하는 이를 괴물로 만들어 낼 뿐이다.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도

학교를 지키려는 교장의 마음도

반 아이들을 지키려는 담임의 마음도

자신을 지키려는 담임의 애인의 마음도

특종을 지키려는 기자들의 마음도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지키려는 두 소년의 마음을 맴도는 주변의 괴물들일뿐.


두 소년 또한 어른들의 눈엔 괴물일 뿐임을.





지금의 나는 괴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오해들로 가득한 상황 속에서 오해를 더 키우며 분쟁을 부추기고 있는 요즘의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나와 대립점에 서있는 그들의 눈에는 내가 괴물이겠지. 나에게 그들이 괴물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난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정말 많은 고민을 나에게 던져준 채 영화는 끝이 났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엔딩장면의 의미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해석하기 나름의 열린 결말이겠지만, 나에겐 어쩐지 나쁜 방향의 결말로 느껴진다.


저 장면의 뒤로 엄마와 담임의 오열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 나에게 이 영화의 마무리는 그러했다.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버린 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일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모르니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게 내버려 두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지.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겠다. 영화에 대해서도, 나의 지금에 대해서도 말이다.


괴물로서든 사람으로서든 그저 살아가야지.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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